주현미 - 이정표 없는 거리 (1969)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m3ASjCg8BFQ
노래이야기
노래 가사 한 줄이 우리네 인생을 대변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 때, 마음이 답답할 때, 우리는 노래 가사를 나직하게 읊조리면서 시름을 달랠 때가 많은데요. 김상진 선배님의 ‘이정표 없는 거리’는 발표되자마자, 우리 인생을 대변해주는 노래로 사랑받았습니다.
이정표(里程標)는 도로상에서 어느 곳까지의 거리 및 방향을 알려 주는 표지로, 어떤 일이나 목적의 기준을 의미하는데요. ‘이정표 없는 거리’라는 제목을 비롯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라는 열다섯 글자의 가사는 수많은 선택과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 인생사를 정확하게 담아낸 명가사로 손꼽히며 많은 사람이 부르고 또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1969년에 발표된 ‘이정표 없는 거리’는 가수 김상진 선배님의 첫 번째 히트곡인데요. 부산이 고향이었던 김상진 선배님은 본명인 ‘남상진’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대 말, 신진레코드에서 ‘울지를 않으리라’와 ‘꿈속의 연정’을 노래하면서 데뷔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많은 남자가수가 선 굵은 저음으로 사랑받던 시절이라서 김상진 선배님의 여리여리한 음색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는데요. 그러다, 이름을 ‘김상진’으로 바꾸면서 1969년. 정민섭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 ‘이정표 없는 거리’를 만나게 되었고, 곡을 받아든 순간, 김상진 선배님은 노래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열과 성을 다해 불렀다고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정표 없는 거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가수 ‘김상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전 국민에게 알렸고, 이후 ‘고향이 좋아’ 등의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1971년부터 73년까지 연달아 MBC 10대가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정표 없는 거리’가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 중에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도 한몫을 했는데요. 3선 개헌이 시행되고, 서슬이 시퍼렜던 군사정권 아래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시절. 휴교령 탓에 대학생들은 공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머리를 기르는 것도, 치마를 짧게 입는 것도,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는 것도, 밤 늦게 돌아다니는 것도 모두 눈치를 보고, 군사정권의 통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노래 제목처럼 인생의 이정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는 높아졌고요. 그 당시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피성 이민을 떠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답답한 심정과 시대상을 대변해주는 가사와 멜로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노래가 바로 ‘이정표 없는 거리’였습니다.
“이리 가면 고향이요 저리 가면 타향인데
이정표 없는 거리 헤매 도는 삼거리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세 갈래 길 삼거리에 비가 내린다
바로 가면 경상도길 돌아가면 전라도길
이정표 없는 거리 저리 가면 충청도길
와도 그만 가도 그만 반겨줄 사람 없고
세 갈래 길 삼거리에 해가 저문다 ”
인생사를 대변하는 명곡으로, 그리고 1970년대 초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갈 곳을 잃은 국민과 떠돌이 철새 정치인을 풍자하는 의미로 사랑받았던 노래 ‘이정표 없는 거리’는 특이하게도 작사가가 두 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김상진 선배님의 노래가 맨 처음 수록된 ‘정민섭 작곡집’에서는 작사가가 ‘돌아가는 삼각지’ 등을 작사한 ‘이인선’ 선생님으로 적혀있는데요. 이인선 선생님은 그 당시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호남 푸대접론과 충청 무대접론이 번지고 있던 시절, 지역 이기주의를 풍자하는 의미로 가사를 썼다고 밝혔지요. 그런데, 훗날, 작사가 박대림 선생님이 이 노래는 자신이 지리산 뱀사골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이정표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가사를 썼다고 밝히면서 맨 처음 누가 노랫말을 썼는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요. 결국, 한국 음반 저작권 협회에도 박대림 선생님과 이인선 선생님이 공동 작사자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두 분 중에 누구 한 사람의 단독 가사라고 정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김상진 선배님의 목소리는 기존 남성 가수들과 색다른 매력으로 사랑받았는데요. 매우 여리고 가늘어서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하면서도 저음에서는 허스키한 느낌이 두드러졌는데요. 이렇게 독특한 목소리를 꼬투리 삼아 검열당국에서는 ‘창법이 저속하다’라는 억지 트집을 잡아 ‘미워도 당신’과 ‘고향아줌마’을 방송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스키하면서 여성스러운 하이톤으로 트로트에 걸맞은 구성진 창법을 구사하며, 서정적이고 향토성 짙은 정서를 담아냈던 김상진 선배님의 노래는 여전히 대중들의 선택을 받으며 애창곡이 되었는데요. 아무리 억지로 문화를 통제하려고 해도, 좋은 노래 가수는 꿋꿋하게 살아남아 우리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의 머나먼 길을 걷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걸음을 멈추고 망설여지는 갈림길에 설 때가 있지요. 그중에 어떤 길을 선택하든 언제나 행복을 보장해주는 길은 없을 거예요. 어쩌다 운 좋게 맞바로 행복을 만날 수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후회도 있고, 미련도 남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인데요. 어차피 누구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인생길이라면, 누가 뭐라든 남들 눈치 보면서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이정표를 찾아 지금 선택한 길을 자신 있게 뚜벅뚜벅 걸어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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