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여정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사람들은 사제가 되는 데에 각별한 시나리오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뭔가 영험한 체험이나 특별한 사연과 같은 것들은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끕니다. 물론 그런 특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던지 가족이 극도로 반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들어왔다던지 하는 식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합니다.
성소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소라고 하면 당장 사제나 수도자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소는 사실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모든 이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직무상으로 하느님에게 헌신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결이 다른 길을 걸을 뿐, 결국 하느님께 나아가는 과정은 똑같은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성소가 존재하고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마치 음식에 특별한 양념이 존재해서 음식의 풍미를 더해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양념은 기본 베이스가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귀한 양념을 구해도 원 식재료가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래 조리해야 하는 음식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거기에 아무리 풍미를 더하는 것을 추가한들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성소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소의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결혼을 하건 말건, 세속에 머무르건 교회 안의 특별한 직무에 머무르건 우리는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 근본을 상실한 채로 엉뚱한 것에 매달려서는 안됩니다.
성소는 가정에서 탄생합니다. 사제나 수도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건실한 신앙이 자리하는 가정에서 그 엑기스로 사제나 수도자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소를 바라볼 때에 신학교나 성소모임만큼 중요한 것이 일반 가정의 신앙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진정으로 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것을 교회 생활이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혹시 성당 안에서 하는 특별한 활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성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평신도 활동들, 수많은 운동과 신심활동을 두고서 '교회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바로 여기에 오류가 존재합니다. 신앙은 특별한 종교 활동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곧 신앙입니다. 신앙은 성당에 들어와서 해야만 하는 어떤 활동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늘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무언가입니다. 바로 이 이분법적인 분리가 오늘날 종교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지껏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이 두 가지를 분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신자이지만 밖에서는 신자가 아닌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여러가지 취미 활동, 사회 활동 가운데 하나로 분류해 버리고 만 것이지요. 성당 안에서는 강론을 듣지만 이미 속으로 '그건 성당 안에서만 해당되는 일일 뿐입니다.'하고 내적으로 선을 그어버리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니 신앙과 일상의 분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성당 안에서만 꾸민듯이 생활하고 밖으로 나서면 돌변하는 모습에 자녀들은 그런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 신앙에 감동을 받는 일도 없고 감흥을 느끼는 일도 없습니다. 신앙적인 무언가를 동경하지도 않고 성소의 꿈을 키우지도 않습니다. 신앙은 언젠가 크고 나면 벗어 버려야 할 짐짝처럼 취급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소의 싹이 자라지 않습니다.
이는 어떤 구조를 바꾸거나 새로운 운동을 창출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신앙의 위기는 역사가 존재한 이래로 항상 같이 이어져 왔습니다. 초대 교회라고 모두가 충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이미 성경에서도 언급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 앞에서도 의심하는 사람은 존재했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시는 분이라면 낙심하지 말고 우리가 간직한 신앙을 잘 키워나가면 됩니다. 신앙 환경이라는 것은 중요하지만 외부의 탓만 하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현명한 다섯 처녀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신앙의 씨앗을 키워 나가다 보면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주변에서도 열매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신앙은 그렇게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하며 신앙의 싹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키워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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