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눈물의 연평도(1964)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KCh7Krb8GiE
노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보다 가기 어려운 섬이라고 하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가리키는 이른바 서해 5도를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 전쟁의 결과, 옹진군의 육지지역인 옹진반도는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이 되었지만, 서해 5도는 섬 주민들과 해병대의 노력으로 군사분계선 이남에 남게 되었고요. 그래서, 서해 5도에는 해병대가 주둔하면서 경기만 일대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이 평화롭게 생업을 도모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나라의 군사적 요충지인데요. 이곳은 현지 주민을 제외하고는 외지인의 발길이 잦지 않아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들이죠.
특히, 그중에서 연평도는 1958년까지 조기 파시로 유명했던 곳이었습니다. 파시는 고깃배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을 말하는데요. 저희가 어릴 때 사회교과서에서도 조기로 유명한 곳은 연평도라고 배웠을 정도로, 동중국해에서 한겨울을 난 조기떼들이 이른 봄 알을 낳기 위해 흑산도 앞바다를 지나 수심이 얕은 연평도 주변 바다에서 몰려들었고요. 조기떼들이 산란을 시작할 때가 되면, 전국에서 수천 척의 고깃배들이 연평도 앞바다로 몰려들어 장관을 이뤘었죠. 이때 고기와 돈이 넘쳐나 주체할 수 없는 어부들의 주머니를 노린 여인네들도 연평도로 들어와서 술집 또한 문전성시였다고 전해지는데요.
그 당시 연평도는 500가구, 인구 3천명에 불과한 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집이 260곳이 넘었고, ‘물새’라고 불렸던 색시들이 400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구요. 연평도 조기 풍어기는 4월 중순~6월 초순께까지 약 50일인데, 이때는 ‘사흘 벌어 1년 먹는다’는 말이 돌았고, 당시 연평도에선 골목길을 떠도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우스개소리까지 있었다죠. 그래서, 그 당시엔 “연평도에서 갈매기는 조기떼를, 어부들은 갈매기를, 색시들은 어부를 따랐다”는 풍문까지 유행했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연평도는 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돈도 많이 풀렸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풍요의 상징이었던 연평도가 비통함으로 가득한 곳으로 바뀌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역대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던 최악의 태풍
'사라호’때문이었습니다.
1959년. 9월 17일 추석 당일에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사라호’는 우리나라 전역을 강타하면서 849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그리고 2533명의 부상자를 낳았고요. 수재민이 무려 98만5천명이었습니다. 당시 낙동강과 섬진강이 범람 하면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고, 전화까지 두절되고, 열차운행이 중단되며 논과 밭이 물바다로 변해버린 그때의 아픈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물론, 사라호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 태풍도 있었지만, 우리에게 사라호가 가장 큰 피해를 남긴 태풍이라고 기억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큰 피해와 인명손실을 입힌 태풍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라호’로 파손된 주택이 12366동이었고, 파손된 선박은 무려 9329척이나 되었는데요. 그 선박 중에는 연평도 어장으로 조기잡이를 나갔던 어부들의 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누구의 아버지이자 누구의 남편이고, 누구의 자식이었던 수많은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사라호를 만나 결국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연평도에는 수백 척의 어선이 부서지고 어부들의 시신이 바다를 뒤덮었다고 전해지고요. 연락도 없고, 시신도 찾지 못한 어부들도 많았다고 하죠.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마음은 얼마나 비통하고 애달팠을까요. 아마도 행여나 다시 돌아올까 간절한 마음으로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만 바라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1964년. 사라호 때문에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못한 어부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연평도에 건립 됐는데요. 이때, 추모비의 제막식에서 가수 ‘최숙자’선배님이 노래한 곡이 바로 ‘눈물의 연평도’였습니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태풍이 원수드라 한 많은 사라호
황천 간 그 얼굴 언제 다시 만나보리
해 저문 백사장에 그 모습 그리면
등대불만 깜박이네 눈물의 연평도 ”
한반도를 휩쓸었던 태풍 사라호에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노래는
작사가 강남풍 선생님이 그 때의 눈물겨운 사건을 노랫말로 엮었고요. 작곡가 김부해 선생님이 곡을 만들어서 희생된 어부들의 넋을 달랬는데요. 4분음 2박자의 트위스트 곡으로 멜로디는 흥겨워보이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전혀 그렇지 않죠. 연평도의 슬픈 사연이 구구절절 묘사되어있고요. 조기떼를 쫓아 연평도까지 갔다가 변을 당했던 어부들을 추모하면서 그 후유증이 수년간 이어지는 가운데 ‘눈물의 연평도’라는 노래는 연평도 주민들과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주었고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며 국민애창곡이 되었습니다.
‘개나리처녀’와 ‘모녀기타’ ‘나룻배 처녀’로 사랑받았던 가수 ‘최숙자’선배님은 1964년에 ‘눈물의 연평도’를 발표하면서 상처입은 전국민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는데요. 이 노래는 이미자, 조미미, 하춘화, 김상진 선배님 등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해서 다시 취입할 정도로 사랑받는 국민가요가 되었습니다.
연평도의 눈물은 사라호 태풍 이후에도 또다시 반복되었죠. 2010년 11월23일 북한군이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하면서 우리 해병대 연평부대가 대응사격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로 인해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부상당하고 사망하고 말았는데요. 어쩌면 ‘눈물의 연평도’는 분단시대를 몸소 겪으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잃어버린 꿈이요, 못 다 부른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80년대 이후 어로 장비가 발달하고, 중국 어선의 싹쓸이로 연평도까지 오는 조기는 거의 줄어들어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지만, 그 자리를 꽃게잡이가 대신하면서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으로 여전히 아름다운 ‘연평도’가 이제는 눈물을 닦고, 모두가 염원하는 평화의 섬으로 함께하길 간절하게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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