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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2022 01 30/ 우리의 성장이 멈추는 때: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멈출 때/ 연중 제4주일

松竹/김철이 2022. 1. 29. 17:28

2022 01 30/ 우리의 성장이 멈추는 때: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멈출 때/ 연중 제4주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_c_z7LeZf40

 

 

 

 

 

2021년 다해 연중 제4주일 성장이 멈추는 시기: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멈출 때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할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하시며 그들을 떠나가십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이들의 잘못은 안다고 착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교만이 모든 이들의 성장을 막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성장을 멈출까요? 자신들이 끊임없이 배워가야 하는 부모를 안다고 판단하게 될 때입니다.

자신을 그나마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부모를 안다고 판단하면 다른 사람들은 뻔한 사람들이 됩니다. 이렇게 그들은 부모에게 상처받고 부모를 판단하고 거기서 성장을 멈추게 됩니다. 몸이 크지만 성장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기에 이런 이들을 어른 아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이란 프로에서 김창옥 강사가 소개한 어른 아이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김창옥 씨가 강사를 하던 초기에 한번은 매우 경직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찾아와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매우 도도하면서도 얼어있었고 다 아는 것처럼 잘난 척하는 말투를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강사가 한마디만 하면 울어버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의 직업은 심리치료사였습니다. 그분이 오히려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몇 주간의 대화 끝에 그 여성은 남편에게도 하지 않은 말을 하겠다고 하고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억제해가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실 저는 제 안에 12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잠실 쪽에 살았습니다. 제가 12살 때 남동생은 9살이었습니다. 꿈에 귀신이 좇아와서 저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 못 하고 벌떡 일어나서 한강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귀신을 피해 한강에 빠졌지만, 허리춤까지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잡아 끌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집안 식구들이 물놀이를 갔을 때 9살 남동생이 물에 빠져 익사하였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그 책임이 나 때문이라고 흐르기 시작했고,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 대신 개가 죽었어야 했는데.’”

이 사건 이후로 그녀의 성장은 12살로 멈추어버렸습니다.

김창옥 강사는 그 여성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지금 울음을 참고 있는데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꼭 선생님 안에 있는 12살짜리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십시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한 번 꼭 안아주십시오.”

며칠 뒤에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젠 수영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른-아이로 남아있게 되는 이유는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혹은 상황 때문에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성장의 기회란 나보다 큰 사람을 탐험하며 알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는 내가 태어나서 알아가는 가장 큰 세상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세상만 탐험하고 싶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사랑을 멈추게 될 때 아이는 성장도 멈춥니다.

위 여성은 결국 부모나 모든 사람이 나를 안 좋은 아이로 판단하고 있어!’라고 판단해버린 것입니다. 내가 판단해버린다는 말은 그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미 규정하여 아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탐험하며 알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때 부모는 끊임없이 아이를 사랑하여 부모의 사랑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내버려 뒀고 아이는 더는 사랑하고 탐험할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지 않기에 성장을 멈춘 것입니다.

내가 판단하는 사람은 내와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은 매일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절대 판단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탐험할 미지의 세상으로 남겨놓습니다. 만약 사람이 판단이 된다면 사람이 되신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는 미지의 세상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그분을 탐험하며 배워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장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가리옷 유다가 성장하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를 매일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자기 틀에 맞추어 규정했을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책과 같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책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책이 내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쉽게 끝나는 사람들은 그 책의 내용을 다 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탐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랑이 오래가는 사람들은 상대를 끊임없이 탐험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사람은 소우주이기 때문에 아무리 탐험해도 끝이 날 수 없습니다. 이 호기심이 나를 성장시킵니다.

영화 이너스페이스’(1987)정말 우리가 서로 잘 아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이 영화에서 조종사 터크는 열등아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의 여진 리디아는 찌질이 터크를 떠납니다.

터크가 참여하는 연구는 사람을 작게 만들어서 토끼 안에 들어가 그 안을 탐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노리는 사람들 때문에 작아진 우주선을 탄 터크는 자신보다 더 찌질이인 잭이라는 한 남자 안에 들어갑니다.

잭은 자신의 몸 안에서 우주선을 빼내려는 나쁜 무리에게 쫓기게 되고 여기서 리디아가 그를 도와줍니다. 리디아는 잭의 몸 안에 터크가 있음을 믿게 되고 키스합니다. 그런데 그 키스로 터크는 리디아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 안에서 자신과 리디아의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봅니다.

터크는 다시 잭의 몸 안에 들어와 그 안에 주입된 다른 악당을 물리치고 나와 커져서 리디아와 화해합니다. 리디아도 잭의 마음을 알고 둘은 결혼에 골인합니다. 찌질이 잭은 이 일로 자신도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음을 깨닫고는 탐정이 되어 자신 있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간의 관계 안에서 성장합니다. 이 성장이 멈추는 순간은 내가 상대를 안다고 느낄 때입니다. 그러면 탐험을 하지 못하고 알아가지 못하고 선장이 멈춥니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성장하고 싶다면 누구도 안다고 하지 맙시다. 나 자신도 다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남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오래 사귄 사람을 만나도 항상 탐험할 수 있는 미지의 대륙으로 여기고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성장합니다.

나자렛 사람처럼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느님의 걸작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을 완전히 알 수는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부모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아기를 잉태하였을 때 나를 잉태한 부모를 아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부모를 알아가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부모를 알고 싶지 않고 그러면 세상이 재미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부모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더 알아갑니다. 상대 안에 있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공기가 상대 안에도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빛이 상대 안에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발견하며 하느님을 더 알아갑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더 열릴 때 그분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우리 앞에 나타나십니다.

성장은 사람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멈출 때 멈춥니다. 그런데 사람을 알려고 하는 마음은 하느님을 알려고 하는 마음이 멈출 때 멈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