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꿀단지

책 읽어주는 수사|6. 예수처럼 부처처럼

松竹/김철이 2020. 12. 28. 01:20

책 읽어주는 수사_6. 예수처럼 부처처럼

(클릭):www.youtube.com/watch?v=gICWxcvF15w&t=2128s

 

제목 : 책 읽어주는 수녀와 수사

낭독 : 황인수 이냐시오 신부(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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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paolo.kr/goods/view?no=5863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문법은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삶의 기술’(ars vitae)에 대해서는 겹치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겹친다고 해서 동일한 가르침이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주어와 술어로, 불교는 불교 특유의 목적어와 보어로 삶의 내용과 형식을 풀어나가니까요. 그렇다고 문법에 너무 끌려 다녀서는 핵심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우리말로 소통할 땐 자유자재이지만, 영어를 할라치면 그 놈의 문법 생각에 언제나 꽉 막혀버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요. 문법을 굴려야지 그것에 굴림을 당해서는 노예의 삶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노예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 두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한 친구는 길이 좁고 문도 좁다(마태 7,13)고 말하고, 불교 신자인 다른 친구는 길이 너무 넓어서 문이 아예 없다(大道無門)고 말합니다. 진리로 통하는 입구에 서서 서로 달리 표현합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아마도 그리스도교 신자는 진리를 인격적인 사랑과 자비의 측면에서, 불교 신자는 비인격적인 지혜의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는 인격적 존재에게로 다가가는 길은 당연히 넓고 문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문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