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松竹/김철이 2020. 11. 3. 10:06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iNo5FIcCysg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도 부족해도 하느님을 열심히 믿고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시험을 해 본다면 그 시험에 무사하게 통과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시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 주십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떤 이가 예수님께 드린 말씀에서 출발합니다. 곧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수님은 곧바로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그럴테지만 과연 그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숱한 사람들을 모두 먹일 정도로 큰 잔치를 베풉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같은 초대를 합니다.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모두가 기다린 잔치였습니다. 적어도 진짜 잔치가 열리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이 차려지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달라진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달랐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거절합니다. 

 

그들의 이유는 하나 같이 개인적인 소유와 관련 되어 있습니다. 밭을 샀고, 겨릿소 다섯 쌍을 샀으며, 방금 장가를 가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유는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우리조차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내 것을 두고 다른 사람의 잔치에 가는 것이 합당할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것을 기준으로 세우고 나면 하느님일지라도 상대적인 가치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결국 하느님을 믿었던 이유도 자신 때문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변심이 아니라 처음부터 위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들의 자리는 초대받지 않았던 사람들로 채워지고 그들의 범위도 점점 넓어집니다. 자신들이 아니면 안된다고 말했던 이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씁쓸한 것은 하느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우리가 쌓아올린 것을 걷어내면 우리는 그 자리에 갈 초대권을 쥐고 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