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松竹/김철이 2020. 4. 2. 08:51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Zs1oAY5eIkA



요한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생애보다 예수님을 우리가 바로 아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순절에 읽은 요한 복음의 많은 부분은 주님에 대한 증언으로 가득차 있고 이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주님을 현실적인 분이 아니신듯 어렵게 느껴지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또 그 제자에게서 들은 것으로 세상에 주님을 증언하기 위해 적혀진 이 이야기들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여러 가치를 배우게 됩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죽지 않는' 의미로 많이 해석되곤 했습니다. 때로 이 주제는 이 세상의 죽음을 기준으로 주님이 오셔서 이 기준을 허무셨다고 해석되기도 했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지금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현혹 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 꾸준히도 등장하는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말하시는 주님께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예언자들을 들며 그들모두가 죽음을 맞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세상의 죽음을 말했고 예수님도 그 죽음을 두고 말씀을 이어가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을 두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의외로 허무하게 결론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아브라함 이전에도 계셨음을 말씀하시고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몰이해도 이해는 갑니다. 그들은 현실을 살았고 이 세상에서 조상 아브라함도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예언자들도 죽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사실을 주고 받으며 나누는 대화는 지금 우리에겐 이렇게 풀리지만 당시 사람들은 손에 돌을 쥘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 영원한 생명을 지닌 분을 사람들이 보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희망의 메세지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메시아로도 보지 못했고 주님도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했지만 또한 주님이 그들에게 영원한 삶의 주인공을 보여주시며 그들이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의 가치에 들어서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말씀하신 아브라함이 꿈꾼 날은 지금 이 순간이었던 겁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아브라함의 즐거움을 보시는 예수님. 그러나 이 사실을 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액자 속 그림을 보는 듯 보게 됩니다. 그들의 막막함이 오히려 수긍이 가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는 주님이 짓궂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삶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이 죽음으로 끝나는 공통의 삶을 넘어 이어진 삶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압니다. 




영원한 생명은 고통을 지나 찾아오는 삶이 아니라 지금부터 그 삶의 가치를 아는 이만이 꿈꿀 수 있는 아브라함의 소원, 곧 하느님과 자신의 무수한 자손들이 함께 사는 행복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이는 지금 이미 행복한 하느님과의 삶을 사는 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