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 찾기"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12월 17일로 들어서며 대림기간의 두번째 시기가 시작됩니다. 이제 2천년 전 우리와 함께 사셨던 구세주를 기억하며 성탄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복음은 그분의 족보를 보여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42대에 걸친 이름들을 나열합니다. 이 족보는 예수님을 실제 인물로 증거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42대는 천년이 넘는 시간이고 다윗의 후손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겁니다.
베들레헴. 우리는 그분의 탄생이 마굿간이었고 구유에 뉘여졌음을 기억하는 중이지만, 방 한칸 구할 수 없었던 애처러운 부부를 예언된 구세주의 부모로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만을 말해줍니다.
곧 그 곳에 다윗의 후손이 얼마나 많았겠으며 그 중 누구를 구세주라고 알아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하느님의 선택과 집중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구세주의 거처를 마련하고 아무리 꾸미고 단장을 해도 여물통에 그분을 모실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발전하고 화려한 시간을 보낸 고풍스런 성당에 주님을 십자가에 모실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는 그분의 탄생을 겸손하고 가난이라고 표현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현실을 직시해볼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가리며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으로 살고 있었고, 우리 자신보다 더 급한 사정을 봐줄 수 없는 피곤한 인생들임에도 틀림 없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당연하거나 이해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나 힘겹고 아픈 사연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을 넘어서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바란다면 그것이 없어서 구세주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모여든 베들레헴. 그들이 모두 자랑스러운 다윗의 후손이었음에도 그들 중 산통을 겪는 어머니와 아들의 사정을 봐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외면당하는 중이셨고, 홀로 우리를 사랑하셨던 중이셨습니다. 그러니 그 마굿간에서 난 이가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고 모두를 구하셨던 겁니다.
도대체 누가 구세주일까를 알아보는 식별보다 모든 이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면 뒤늦은 후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이는 마굿간과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태어납니다. 구세주가 아니라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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