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와 망개떡
가끔 혼자 조용히 앉아 공상의 세계로 빠져들 때면 스스로 생각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홀연히 떠오르는 모습들이 흘러간 세월이 되어 추억 속으로 뛰어든다. 그 모습들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 식사 때만 되면 누구 하나 오라고 손짓을 하지 않아도 용케도 찾아와 구수한 밥 내음에 군침을 삼키며 "밥 좀 주소! 시계 보소!" 라는 익살로 걸식하던 각설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퀭한 모습이다. 그 당시 그들의 목소리는 듣기에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들렸어도 그들의 심정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참담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바싹 마른 등짝에 업은 어린 젖먹이가 배가 고픈 나머지 칭얼거리자 등에 업은 채 젖먹이의 몸을 비스듬히 앞으로 돌려 빈 젖꼭지를 물린 채 구걸하던 여성도 있었다. 2~30대 초반의 현대인들이야 이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요즈음 같이 살기 좋은 세상에 그토록 배가 고프고 생활이 어려웠다면 무슨 일을 한들 등에 업은 젖먹이 하나 배부르게 먹이지 못해 그다지도 청승맞고 구질구질한 모습을 집집이 다니며 다 보여주느냐며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 여성 각설이 슬하엔 등에 업었던 그 젖먹이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요즈음이야 나라에서 인구가 주는 추세라 자녀를 많이 낳기를 권장하는 실정인데도 불구하고 자식을 많이 낳는 이들은 야만인이라는 생각을 고집하는 현대인이 있는가 하면 자식이 무슨 인생의 귀속 물이고 자식들 덕 볼 일이 있느냐며 많은 자녀를 갖는 것을 자제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일부 가정의 부부들은 자녀를 두지 않고 부부가 둘만이 평생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곤 하는데 한평생 부부가 마음 맞춰 주어진 인생을 살다 가면 되지 자식은 낳아 무엇하냐는 생각으로 인생을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당시엔 각 가정에는 세~네 명은 보통이고 자녀를 많이 둔 가정에서는 다섯, 여섯 심지어 열 명에 가까운 자녀를 낳고 사는 가정도 적지 않았던 시대였던 탓에 그 여성 각설이 슬하엔 집에 두고 온 자녀들이 더 있었음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각설이들의 인생에 청승맞고 구질구질했던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멋도 있었고 인생관도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들 각설이 패들이라 불리던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만 주며 얻어먹기만 하며 생을 이어갔던 것이 아니라 밥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술 한 잔을 얻어 마시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그 은덕에 보답하려고 거의 대를 이어 몸소 익힌 각설이 타령이라는 한 곡의 노래를 혼에 실어 은덕을 베풀어 주었던 이들에게 순간적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각설이 패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부르는 노래를 장타령(場打令)이라고도 하는데, <각설이타령>과 <장타령>은 별개의 것이라는 설도 있다. <각설이타령>은 각설이 패의 쇠퇴와 더불어 거지·문둥이들이 남의 집 앞이나 장터에서 구걸할 때에 부르게 되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시작한다. 보통 4·4조(調)로 되어 있고 장단은 2분 박(二分拍)의 보통 빠르기인 4박자이다. 분자식(分子式)으로 일자(一字)부터 십자(十字), 만자(萬字)까지 올라가면서 글자 음에 맞추어 부르는데, 박자가 빠르고 흥이 나며 가사가 명랑하고 지방에 따라 사설이 조금씩 다르며. 주로 경기 이남 지역에서 불렸다고 한다.
“얼씨구나 잘한다. 품바나 잘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판서 자제로 팔도감사 마다고 돈 한 푼에 팔려서 각설이로만 나섰네! 저리시구 저리시구 잘한다. 품바하고 잘한다. 네 선생이 누군지 남보다도 잘한다. 시전서전을 읽었는지 유식하게도 잘한다. 논어 맹자를 읽었는지 대문대문 잘한다. 냉수동이나 먹었는지 시연시연 잘한다. 뜨물통이나 먹었는지 걸직걸직 잘한다. 기름통이나 먹었는지 미끈미끈 잘한다. 일자 한 자 들고 보니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다. 열에 장자나 들고 봐라. 저 건너 장한 숲에 범이나 열 마리 들었는데 장안 포수 다 모아 그 범 한 마리 못 잡고 총소리만 내는구나 설설 긴다. 기개장 무릎아퍼 몬보고 앉어본다. 안간장 고개아퍼 몬보고 서서 본다. 서울장 다리아퍼 몬보고 입 크다. 대구장 무서워서 몬보고 도보한다. 경주장 숨이가뻐 몬보고 춘천이라 샘밭장 신발이 질어 못 보고”
이와 같은 각설이타령 즉 장타령의 가사 속에는 집도 절도 없던 각설이들의 애환과 깊은 한의 골이 패 입 밖으로 배출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으며 때로는 높은 신분의 양반네들을 비안양거리는 가사를 지어 양반들을 골려주곤 하였다. 추억 속 각설이들을 찾아
때로는 그들 처지에 맞지 않게 익살스럽기도 하고 또, 때로는 힘겹고 험한 세상살이에 찌들어 버린 그들 삶을 대변해 주는 가사의 각설이 타령을 듣고 있노라니 음식을 만드는 냄새가 문틈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앞뒤로 마주하여 통풍을 시킬만한 문이 적당하지 않았던 터라 아내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나가며 통풍을 위해 조금 열어두었던 문틈으로 아내의 손을 떠난 갖가지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인간의 본능인 먹거리에 대한 욕망이 영혼을 지배하려 안 간용을 다 쓴다. 그리고 갑자기 어린 시절 거의 날마다 아침저녁 끼니때면 접하였던 각설이들의 모습이 예전 그대로 떠오른다. 그 당시 이 시간 때면 지금의 그들도 나처럼 먹고 싶은 욕망이 육신을 지배하다가 부족하여 영혼마저 희롱했었겠지 하는 생각에 빠져들 무렵, 대문 밖 골목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담은 소리 한 점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로 들려온다.
"찹쌀~떡!~ 망개~떡!!" "찹쌀~떡!~ 망개~떡!!" 하고 굵직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사람들은 흔히들 말한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망개떡은 사람들의 영혼 속에 뛰어들어 한순간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남기는 데 있어 충분한 제 노릇을 해낼 수 있는 것 중 하나인데 망개떡은 경남 의령군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의령 토속 음식 중 하나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라고 칭하는데, 그로 인해 ‘망개떡’이라 불리게 되었다. 청미래덩굴 잎의 향이 떡에 배어들면서 상큼한 맛이 나고, 여름에도 잘 상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찹쌀가루를 찜통이나 시루에 충분히 쪄낸 후 절구에서 차지게 될 때까지 찧습니다. 절구에 친 떡을 도마 위에 놓고 방망이로 얇게 밀어준 후, 설탕, 꿀, 계핏가루를 첨가한 계피 팥소를 넣고 사각 모양으로 빚어 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떡을 두 장의 청미래 잎 사이에 넣어 김이 충분히 오른 찜통에 넣고 오랜 시간 찌게 되면 말랑말랑하면서도 차진 망개떡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망개떡 특유의 쫄깃쫄깃한 맛과 상큼한 망개잎의 향기는 남녀노소 모두의 구미를 돋구는데 의령의 나이 드신 많은 분의 추억 속에는 아직도 한겨울밤의 "찹쌀~떡!! 망개~떡!" 하고 외치며 집 앞을 지나가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 망개떡을 맨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세상을 보고자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삼 주 만에 심한 고열로 입었던 장애 때문에 평생을 스스로 한번 일어나 앉지도 못할 줄 알았던 내가 내 의지대로 일어나 앉기 시작한 지 두 주째, 날듯이 기뻐하셨던 아버님께서 어느 날 퇴근길에 사 들고 오셔서 사랑이 듬뿍 담긴 미소로 입에 넣어주셨던 것이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망개떡이었는데 당시 어린아이의 철없던 시야에 들어왔던 것은 거무칙칙한 강보에 싸인 갓난쟁이 아기처럼 망개잎을 여는 순간 하얀 속살을 드러냈던 망개떡,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맛있게 느껴졌던 것인지 몰라도 얼마나 맛있었던지 먹거리도 많고 맛깔나는 음식들도 많은 요즈음 현대인들이 먹는다면 망개떡 본래의 맛이 제대로 전달될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최근에 먹어본 망개떡의 맛은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망개떡과 각설이는 닮은꼴이 많은 듯싶다. 평생 살아야 할 생이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고 때만 되면 집집이 기웃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다는 것, 이제는 그리워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대충 가려낸 닮은꼴이다. 이날, 비록 망개떡을 사 먹지는 못했지만, 유수처럼 흘러가 버린 세월 속에 덧없이 잊혀 가던 추억의 소리 들을 되찾은 듯하여 참으로 행복하고 기뻤던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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