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첩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인생(人生)이라 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노라면 좋은 일도 궂은일도 추억이 되고 몇 장의 사진이 되어 죽기 전에 쉽게 사그라지지 않은 기억 속 사진첩으로 남는다. 그 사진첩 속엔 못 먹고 못 살던 유년시절
사람마다 추억의 빛바랜 사진첩이 몇 권씩은 있을 테지만, 내게는 남달리 빛바랜 사진첩이 많을 것이다. 봄비 내리는 이즈음 문뜩 추억 속 빛바랜 사진첩이 보고 싶어 몇 장 넘겨본다. 그날도 봄이었고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일곱 살 개구쟁이 귓속에 들어온 빗소리는 아주 오래 사귄 동무였고 말벗이었다. 기와집 처마 위에서 줄 곳 떨어지는 빗방울 매력에 빠져 무릎 뜀박질로 달려가 부엌 바닥에 놓여 있던 양철 양동이를 외출하신 어머니 몰래 들고 와서는 현관 밖과 현관 안 사이에 놓인 평상을 타고 현관 밖으로 나가 양동이를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 밑에 놓고 빗방울 연주를 들으니 대자연이 작곡해 내리는 비의 환상곡, 비의 소나타로만 들리는 것이었다. 철부지 귀에 들리는 그 소리가 얼마나 좋았던지 다시금 부엌으로 달려가 철로 만들어진 그릇이란 그릇은 제다. 하나씩 가져다 비 내리는 처마 밑에 놓으니 그릇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어린 심상(心象)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덕분에 그날은 어머니께 혼이 나는 날로 기억의 카메라에 찍힌 날이었지만,
추억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영원한 생명을 지닌 만큼 추억도 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지만, 추억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고 그 시절, 그 또래로 제자리에 있는 법, 나의 유년시절 추억도 그때 그 모습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한 장 빛바랜 사진첩을 넘기면 주름진 얼굴과 서리 내린 반백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있다. 그때, 내 나이 아홉 살, 그날 저녁밥은 유난히 일찍 먹었던 터라 기나 긴 겨울밤을 넘기기란 무척 버거웠다. 돌멩이를 삼켜도 능히 삭혀낼 나이의 형님과 나는 여덟 시를 조금 넘기자 배꼽시계가 염치도 없이 마구 울어대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형님이 아버지께 찹쌀떡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날 따라 저녁마다 동네 안팎을 쥐방울 들락거리듯 하던 찹쌀떡 장수가 오질 않는 것이었다. 결국, 찹쌀떡 장수를 기다리다 지쳐 어머니께서 드문 야참으로 국수를 삶아 주셨는데 멸치 다시 물도 없이 맹물에 삶아 왜간장 몇 방울 켜 얹어 주셨던 그 냄비국수 맛은 내 살아생전 맛볼 수 없는 천상의 국수 맛으로 빛바랜 추억의 사진첩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내 생에 남은 추억의 사진첩엔 또 어떤 모습, 어떤 표정으로 채워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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