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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 빚진 은혜/잠시,뒤돌아 보며 1 월간 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14. 9. 30. 12:58

어머님께 빚진 은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갑이나 수첩 속을 들여다보면 신용카드와 가족사진, 그리고 교통경찰에게 떼인 속도위반 딱지 등이 손쉽게 눈에 들어온다. 또 더 깊은 곳에는 귀퉁이가 지난 세월에 낡은 작은 종이쪽지에 적힌 애송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주민증을 꺼내느라 지갑을 열었을 때 지갑 속에 어머니 은혜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30여 년 전 일반인들이 사용했던 버스 회수권 두 장이 몇십 년을 외롭게 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시내 전차는 타봤어도 50평생을 살아도 혼자 시내버스 한 번 타본 적 없는 내 지갑 속에서 어떻게 해 묶은 시내버스 회수권이 나올 수 있느냐는 아내의 말에 올 고르지 못했던 지난 세월을 잊고 싶었던 것이었든지 아니면 어머니 손길이 담긴 흔적을 애써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심사였지만, 얼떨결에 소용없으니 버리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 버스 회수권 두 장이 어머니의 하늘 같고 바다 같은 은혜였고 사랑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어머니 영전에 죄송함을 절로 느낀다.

 

 내 나이, 스물여덟 살 때의 어느 날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한 친구가 자동차를 가져와 외출하려는 내게 어머니께선 버스 회수권 두 장을 건네주셨다. 당시 어머니 행동은 날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혼자 외출해본 일도 없고 외출할 수도 없었던 내게 버스 회수권이 웬 말일까 그러나, 어머니 생각을 달랐다. 누구든 사람 일은 모르는 법, 친구들과 헤어져 행여 혼자 돌아올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땐 길가는 행인 중 아무나 붙잡아 버스 좀 태워달라 부탁하며 공중전화로 집에다 연락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어머니 생각이 엉뚱하기도 했지만, 전혀 터무니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요즈음처럼 행여 이웃에 도둑이 들어 “도둑이야!” 하는 소리만 들려도 문을 박차고 나가 도와주기는커녕 열려 있던 문마저도 걸어잠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에 닥칠 양이면 이웃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요 이웃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도둑을 쫓아 이웃의 슬픔을 미연에 방지해 주었던 그 시절 그 인심이었기에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누구나 발 벗고 나서 도와주려 했다는 것이다.

 

 몇 차례 지갑이 낡아 바뀌는 동안 용케도 옮겨 다녔던 낡고 해 묶은 버스 회수권인 흘러간 세월 따라 지갑을 떠났지만, 그 시절 어머니께 빚진 은혜는 여태 이자에 이자가 붙어 은행 하나 문을 열고도 남음이 있을 터, 어머니 사랑이 지나쳐 제 학교 성적에 연연한다 하여 제 어미 목숨을 개 목숨 취급하는 패륜도 서슴지 않은 탕아(蕩兒)보다 못한 아들자식이 태어난 이 시대, 이 나라 국민으로 살면서 그 시절 시내버스 회수권 한 장이 몇십 원에 불과했지만, 그날, 어머니 내게 주신 사랑과 은혜는 과히 하늘과 같고 바다와 같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