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의 성모님 이야기 (7) 예수님 뒤에는 항상 성모 마리아가
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라도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마르 6,1-6).
이처럼 예수님은 고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다른 말씀과 비교해보면 마태오복음 13장에는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표현이 있다. 루카복음에는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마르코복음은 왜 '그 목수가 아닌가?'라고 했을까? 마르코복음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없다. 요셉의 아들 혹은 목수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그 앞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 어린 시절 언급이 없기 때문에 바로 목수로 불린 것이다.
예수님의 형제들로 표기된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마리아의 자녀들인지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학자들 간에도 여러가지 설명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명단이 마리아의 자녀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요셉의 전처 소생들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형제들이라는 단어가 굳이 친형제만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배다른 형제거나 사촌지간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마리아의 자녀라고 불리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예수님 유년기에 형제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또 이 4명 형제들 가운데 야고보와 요셉은 다른 마리아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마르코복음 15장에는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마태오복음은 마르코복음보다 마리아에 대해 더 많이 다루고 있다. 특히 예수님 유년기를 이야기하면서 그와 관련된 마리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증언자로 마리아를 내세운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마리아, 예수님의 공생활과 관련된 마리아로 나타난다.
제일 먼저 마태오복음 1장 1-18절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을 낳고…(중략)". 이 족보를 가만히 보면 아주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여성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이다. 당시가 남성 중심 사회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자들이 거론된 것은 매우 주목할만하다.
이 족보에는 타말, 라합, 룻, 바세바 등 여성 4명이 나타난다. 학자들 간에 왜 이런 여인들 이름이 나오는지 논란이 있었다. 이들 여성의 공통점을 죄녀라고 꼽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마리아와 무슨 관계인가? 이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했다. 많은 학자들은 정상적인 이스라엘 여성들(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사악의 아내 리브라 등)도 많은데, 왜 이방인이 포함된 이런 이들의 이름이 족보에 올라왔는지 의아해한다.
이는 하느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느님 뜻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경우 선택권이 상대 조건에 따라 바뀐다. 상대가 멋있는지, 예쁜지 등 조건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만 하느님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실제로 예수님이 제자를 선발한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마태오복음 1장 18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라며 예수님 탄생을 다루고 있다. 성모님의 잉태는 성령에 의한 것이다.
마태오복음 1장 1-12절을 보면 동방박사의 방문이 나와 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라고 표현돼 있다. 또 마태오복음 2장 13-23절에는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 있어라"고 나와 있다. 요셉의 아들이라는 표현 대신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로 표현된다.
또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항상 뒤에 머물던 마리아를 보여준다.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을 앞에 두고 뒤에 머물러 계신다. 마태오복음은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리=이서연 기자 kitty@pbc.co.kr
이처럼 예수님은 고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다른 말씀과 비교해보면 마태오복음 13장에는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표현이 있다. 루카복음에는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마르코복음은 왜 '그 목수가 아닌가?'라고 했을까? 마르코복음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없다. 요셉의 아들 혹은 목수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그 앞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 어린 시절 언급이 없기 때문에 바로 목수로 불린 것이다.
예수님의 형제들로 표기된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마리아의 자녀들인지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학자들 간에도 여러가지 설명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명단이 마리아의 자녀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요셉의 전처 소생들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형제들이라는 단어가 굳이 친형제만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배다른 형제거나 사촌지간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마리아의 자녀라고 불리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예수님 유년기에 형제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또 이 4명 형제들 가운데 야고보와 요셉은 다른 마리아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마르코복음 15장에는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마태오복음은 마르코복음보다 마리아에 대해 더 많이 다루고 있다. 특히 예수님 유년기를 이야기하면서 그와 관련된 마리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증언자로 마리아를 내세운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마리아, 예수님의 공생활과 관련된 마리아로 나타난다.
제일 먼저 마태오복음 1장 1-18절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을 낳고…(중략)". 이 족보를 가만히 보면 아주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여성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이다. 당시가 남성 중심 사회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자들이 거론된 것은 매우 주목할만하다.
이 족보에는 타말, 라합, 룻, 바세바 등 여성 4명이 나타난다. 학자들 간에 왜 이런 여인들 이름이 나오는지 논란이 있었다. 이들 여성의 공통점을 죄녀라고 꼽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마리아와 무슨 관계인가? 이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했다. 많은 학자들은 정상적인 이스라엘 여성들(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사악의 아내 리브라 등)도 많은데, 왜 이방인이 포함된 이런 이들의 이름이 족보에 올라왔는지 의아해한다.
이는 하느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느님 뜻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경우 선택권이 상대 조건에 따라 바뀐다. 상대가 멋있는지, 예쁜지 등 조건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만 하느님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실제로 예수님이 제자를 선발한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마태오복음 1장 18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라며 예수님 탄생을 다루고 있다. 성모님의 잉태는 성령에 의한 것이다.
마태오복음 1장 1-12절을 보면 동방박사의 방문이 나와 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라고 표현돼 있다. 또 마태오복음 2장 13-23절에는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 있어라"고 나와 있다. 요셉의 아들이라는 표현 대신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로 표현된다.
또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 항상 뒤에 머물던 마리아를 보여준다.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을 앞에 두고 뒤에 머물러 계신다. 마태오복음은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리=이서연 기자 kitty@pbc.co.kr
출처 :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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