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814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bPXvJ_FbNp8
2026년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고해소에서 듣게 되는 것은 ‘비밀’의 의무가 있음을 모두 압니다. 고해를 듣는 사제는 물론 고해하는 이도 어떤 이유로든 고해를 듣게 된 이들도 이 비밀의 의무에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해소를 상담의 자리로 잘못 아는 이들도 많은 듯 느껴질 만큼 고해의 내용이 잘못이 아닌 잘못의 ‘이유와 배경’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한 주님의 용서를 선언해야 할 자리에서 정작 용서할 죄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유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은 그가 이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하고, 가슴 아파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들어왔는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 주님이 직접 이루시는 ‘성사’ 중에는 우리가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닮은 것이 있습니다. 곧 ‘혼인성사’입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주님처럼 세상의 무수한 사람 중 한 사람에게 평생을 약속하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혼인의 본질은 창조하신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하느님이 당신의 것으로 만드시는 ‘불가해소성’ 곧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이니 사람이 결코 갈라놓을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은 눈 앞에 벌어지는 서로 각각인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자리입니다. 고해성사에 벌어지는 이 숱한 죄의 이유들로는 결코 갈라질 수 없는 것이 이 혼인의 결과가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재는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이혼을 정당화하려 했던 이스라엘과 닮아있음을 봅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이유만 있다면 헤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하느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선택’의 영역으로 여기는 일도 벌어지는 세상에는 죄를 ‘상대적 결과’로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완고함이 모세마저 거절하지 못했던 옛 시기와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은 한 편으로는 외로운 의인의 모습으로 고립되고, 또 한편으로는 그분과 나는 다르다라는 식으로 자포자기의 사람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로 이어짐을 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바뀔 리 없고 사람의 사랑도 하느님을 닮았음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되돌려놓은 가치를 우리가 다시 감추고 바꾸려는 시도는 멈춰져야 합니다. 세상이 바뀐 것은 사람들의 완고함 때문이겠지만 사랑이신 하느님은 그 완고함을 인정하실 생각은 처음부터 없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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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