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706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D7rJ32AtfRY
2026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의 기준에 따라 어느 것이 더 큰가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물론 눈으로 확인되고 개인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계량하거나 규칙을 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이 땅에 내렸습니다.
“회당장의 딸,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
오늘 복음에서 만나는 두 기적의 대상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고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다른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찾아와 엎으려 절하는 회당장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과 또 겸손의 극치 속에 주님의 발걸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가는 길 도중에 주님의 발걸음을 붙잡은 사건 속 ‘부정함을 지닌 여인’은 드러내지도 못할 몸의 병을 감추고 주님의 뒷곁에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댑니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참 어려운 듯 하지만 허무할만큼 쉽기도 합니다. 회당장은 발품에 엎드리기까지 하며 정성을 들였다면 몸을 드러내지 못하는 여인은 군중의 무리에서 주님의 뒤편에 서 있을 뿐이었음에도 죽을 병인 듯 죄인이 되는 무거운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누군가는 소녀는 죽음에서 일으켜졌다고 그 크기를 아버지의 정성과 연결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드러난 소녀의 사연이 죽음으로 인해 모두를 실망에 떨어지게 했던 과정을 본다면 소녀는 ‘잠들어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는 그저 잠을 깨운 것에 불과합니다.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드러난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여인은 몰래 주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면, 소녀는 주님이 손을 잡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인의 처지처럼 그녀는 처지와 신분과 손길조차 숨겨야 했으나 주님이 보신 것과 아버지에서 소녀까지 모두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이 드러난 것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둘로 갈라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기적에서 우리는 어느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이 어떤 조건과 관계없이 펼쳐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아시겠지 마음에 품은 사람의 숨은 소리도 들으시는 하느님, 모두가 포기해버린 상황에도 당신의 사랑을 포기하신 적이 없으신 하느님께 기쁜 마음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5 "딸아, 용기를 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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