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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704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6. 7. 4. 08:40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704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fMc5pwe7mtY

 

 

2026년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적당한 시기와 계기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또 이런 이야기의 다른 편에는 어떤 일도 양이나 정성이 중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단식’을 두고 양쪽의 이야기가 모두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질문이지만 동시에 이는 예수님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고, 이 질문 앞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심지어 바리사이들도 하는 ‘단식’입니다. 그리고 이 단식은 ‘많이’라는 수식어를 포함합니다. ‘양적’ 기준으로 단식이 셈해진다는 것은 일종의 ‘기도’와 ‘정성’으로 단식이 표현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왜?”는 없고, 단식 자체가 나타내는 정성과 양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것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다른 시각과 내용의 답변을 주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단식과 슬퍼하는 일을 연결시킬 이유는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말씀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습니다. 곧 지금은 정성으로 하느님께 서야 할 때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예수님은 그럼에도 그들도 눈에 보이는 ‘단식’을 하게 되리라 하십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단식은 정성이 아니라 ‘곡기’를 끊는 것입니다. 스승을 잃고 하느님의 죽음을 확인한 때는 정말 슬픔의 단식을 할 때이고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과 사방으로 흩어지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의 단식은 그렇게 이유가 있는 단식이었습니다.

그때처럼 현재의 우리에게도 양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정성’의 단식과 기도가 여전하고, 또 그 상황에서 하느님 앞에서 하게 되는 표현으로 모두 담을 수 없는 단식과 기도가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의 이야기는 초점이 다른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기도와 정성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에게 지금이 어떻게 기도하고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살피는 눈과 마음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0:00 오늘의 복음
1:26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