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62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APWv0gKhQnM
2026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오늘의 말씀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6.25라는 단어가 아주 큰 울림이 있었던 어릴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질리 없는 커다란 비극적 사건을 나타내는 숫자지만 이제는 많이 담담해지고 또 다른 의미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나라 안에 생긴 분리와 전쟁으로 고착되어버린 이별의 상태에서 언젠가는 만나야 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과 시도는 어느새 가르침이 되었고, 이제 따로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들도 또 이렇게 분리된 채 살아가는 방법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통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듯 사람들의 입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듣는 일도 드물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모든 다툼에는 배경과 사건의 내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누구는 잘못했고, 또 그 잘못이 또 다른 잘못된 장면을 이끌어 냅니다. 분명 누군가의 잘못으로 시작된 이 싸움의 결론이 이별이 된 지금이지만 오늘 복음에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단어 하나가 오늘을 지내는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바로 “제 형제”입니다. 이 전쟁은 그리고 분단된 우리는 분명 시간이 지났어도 남이 될 수 없는 “형제”입니다. 같은 말만 남았고, 서로 다른 이념과 삶의 모습을 지녔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분명 “형제”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통일의 이유는 없고, 용서의 근거도 그보다 더 크지는 않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현실이 되어 전해집니다. 통일은 멀리 사라진 개념이 되고, 현실에서 자신의 삶의 행복을 찾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일흔일곱 번까지라도’가 의미하는 한 없는 용서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라질 수 없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근본이기에 사랑의 영원함, 혹은 결코 지워지거나 취소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처럼 우리 마음에도 이 용서의 울림은 사라져서는 안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들이 통일을 바랐고, 이제 그 후손인 우리가 살면서 결코 바라지 않는 통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지금을 살지만 통일의 이유와 필요는 현실적인 이익과 계산 이전에 우리가 형제라는 사실과 형제의 싸움은 ‘칼로 물베기’와 같아야 한다는 근본을 잊지 않은 언제 어느때 분명 이루어지리라 희망을 가져봅니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의 화해와 통일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21 "주님, 제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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