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61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ViFzXUcoiws
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발전을 거듭해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틀리진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언제나처럼 세상 전체와 개인의 가치를 두고 생각과 우선 순위를 달리해왔고,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세상에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모든 것의 기준이고, 목표가 된 세상. 그래서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고민에 휩싸인 듯 보입니다. 심지어 교회의 모습 역시 같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아주 오랜 동안 세상이 따른 규칙 중에는 복음에 등장하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가 있습니다. 동태복수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정의’라고 하는 기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표현과 방법의 내용을 바꾸어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충격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요즘 세상에는 본 의미와 달리 악용될 여지가 많습니다. 자칫하면 강자를 존중하고 약자는 운명으로 돌리라는 식으로 곡해될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는 이 말씀은 악인의 죄를 인정하라는 이야기가 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고, 악은 더 큰 악을 부르기에 맞서지 않음은 글자 그대로 해석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우리는 맞서는 대신 그들을 이용하거나 편드는 행동도 많기에 이런 걱정은 그냥 우려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진짜 가르침은 이런 내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이것이 동일한 가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유발함은 물론 그 복수가 같은 가치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동일함과 평등이 내용에서는 그럴 수 없음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의 가르침은 악한 이를 방치하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악으로 번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달라는 자, 꾸려는 자는 ‘없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를 ‘필요한’이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곧 이 말씀의 해석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열린 자세를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법이 그렇듯 법은 최소의 기준입니다.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우리의 자세를 바로 해야 합니다.
0:00 오늘의 복음
1:18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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