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53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higAqNasbt4
2026년 5월 31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알아야 할’ 것들을 ‘교리’라 합니다. 이 교리들은 필수적인 지식으로 이야기될 때가 많지만 모든 것이 나중에 정리되고 기록된 것일 뿐 누가 만들어서 사람들을 구별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그저 듣고 보는 것만으로 그치는 ‘믿을 것’도 존재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위일체’ 신비입니다.
“삼위일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드러나는 위격들. 분명 같지 않고 구별되는 이 세 위격을 한 분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적혀 있을 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표현은 그 표현 이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일시에 부정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곧 하느님은 하나의 세 가지 측면도 아니고, 변신 로봇처럼 그때 그때 다른 하느님의 모습도 아니기 때문에 셋이며 하나인 이 비슷한 어떤 것으로도 진짜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삼위일체 안에서 흐르는 ‘일치’의 의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치는 우리에게까지 내미신 예수님의 기도 속에도 등장합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해도 하느님 안에 우리도 일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일치의 비결이 되는 ‘사랑’에 대한 요한 복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제 주님의 생애가 끝났고 성령도 오셨으니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듣고 우리가 살아야 할 ‘서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하느님을 봅시다.
“외아들”
예수님 생애의 대부분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아들이 언급하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순서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마음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우리 눈에 보인 이유를 복음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먼저 등장하고 그 이유로 외아들, 곧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에서 ‘가장 사랑하는’ 표현이 다시 한 번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하느님은 ‘심판’이나 ‘처벌’이 아닌 당신과 하나요 당신과 한 마음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을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여전한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느님은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의도를 통한 아들과의 일치에 관한 증언입니다. 세상을 멸망 대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하느님의 준비가 바로 아들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삼위일체를 우리가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들을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아들조차 성령을 보내시는 이 원리가 하느님이 한 분이심의 내용은 모르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사랑 안에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말은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 주제가 됩니다.
누군가는 삼위일체 때문에 자신이 구세주가 되지 못함을 이유로 삼위일체를 파기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새로운 구세주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구세주와 비슷하지도 않는 자신 중심의 ‘이기적인 주님’은 한 분일 수 없음도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자신에 대해 주장하지 않았고, 늘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로 자신의 모든 삶을 이루셨기에 우리는 그 아들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알기는 하느님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내용과 결과는 그렇게 삼위일체를 완전히 드러냅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신 이유조차 예수님은 당신의 자리를 빼시고 이제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고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시대를 산다고 말합니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창조주 하느님을 볼 수도, 우리 눈 앞에 함께 사셨던 외아들을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느님이 완전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그리고 아들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여전히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서 이 한 분 하느님을 닮아 사는 행복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0:00 오늘의 복음
1:09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영적♡꿀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 그대는 무엇을 믿는가? (0) | 2026.05.31 |
|---|---|
|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 | 삼위일체 대축일 교중 미사 강론 | 바로 나, 나 때문에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이런 선택을 하셨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6.05.31. (0) | 2026.05.31 |
|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 이제야 편히 쉬다 (0) | 2026.05.31 |
| 2026년 5월 31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매일미사ㅣ김준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집전 (0) | 2026.05.31 |
| [쉬기날기] 2026년 5월 31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묵상 안내 (0) | 2026.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