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60528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GqFK5TFqB5Y
2026년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하고 힘겨운 삶의 주인공들의 이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부자집 앞에 놓여진 라자로가 있고, 오늘 등장하는 바르티매오라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바르티매오에 대해 복음은 ‘티매오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라는 말조차 ‘티매오의~’로 읽힐 수 있습니다. 곧 이름이 ‘바르티매오’가 아니라 그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릴 뿐 실제 이름을 알지 못한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스쳐지나는 힘겨운 삶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은 지금도 비슷합니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그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구걸로 연명하던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시각장애인의 특징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지나치시는 주님의 이름을 듣고 주님이 계실듯한 방향을 향해 고함을 지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는 꾸지람을 듣고도 오히려 소리를 키웁니다. 그의 행동에는 아주 간단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더욱 큰 소리’가 알려주는 간절함도 담겨 있습니다.
“그를 불러오너라.”
그의 ‘큰 소리’는 시각장애인이 가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큰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들리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입니다. 잠자코 있으라는 이야기에 더욱 큰 소리를 지른 것은 그래서 더욱 분명한 그의 간절함과 그가 자신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주님의 귀에 결국 도착했고, 주님은 그를 불러 오도록 화답하십니다. 사방, 방위에 상관없이 외침을 주님이 들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이 그에게 묻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의 입에서 “다시 볼 수 있게”라는 말을 들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가 원래 보던 사람이라는 뜻일 수 있다는 이야기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뻔한” 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시각장애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질문을 던지신 것이 아닌 예수님은 그에게 직접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하시며 그를 위로하십니다. 소리가 가장 효과적인 삶의 방식이 된 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잠자코 있으라’ 외치는 이의 모습이 떠올리기 싫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름 없는 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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