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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부활 제6주일 복음 특강 | 세상은 왜 성령을 알아보지 못할까? |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주임 I 2026.5.10

松竹/김철이 2026. 5. 10. 07:00

[전삼용 신부님의 부활 제6주일 복음 특강] 세상은 왜 성령을 알아보지 못할까? I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주임 I 2026.5.10 천주교/가톨릭/신부님강의/가톨릭스튜디오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MxBtQOSJZqE

 


2026년 가해 부활 제6주일 – 세상은 왜 성령을 알아보지 못할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주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요한 14,15-1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진리의 영이신 '다른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약속의 끝에 아주 뼈아픈 진단 하나를 덧붙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성령을 보지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이 우리 곁에 오셨는데, 왜 똑같은 눈을 달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그 위대한 현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뇌가 수신하고 있는 '주파수'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2007년 1월의 어느 추운 아침, 미국 워싱턴 D.C.의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 입구에 평범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한 청년이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은 그를 흔한 거리의 악사쯤으로 여기고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45분 동안 그가 연주를 하는 사이, 무려 1,097명의 사람이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악사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습니다. 그가 들고 연주한 악기는 1713년에 제작된 350만 달러(약 45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명기였고, 그가 연주한 곡은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답고 난해한 곡으로 평가받는 바흐의 '샤콘느'였습니다. 불과 이틀 전, 보스턴 극장에서 열린 그의 똑같은 연주회는 한 좌석에 10만 원이 넘는 표가 매진될 정도로 대성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하철역에서 45분 동안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춘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계 최고의 거장이 뿜어내는 수십억 원짜리 천상의 선율을 곁에 두고도, 시계를 쳐다보며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버렸습니다. (출처: 워싱턴 포스트, 「진주 실험」 2007)
왜 사람들은 그 엄청난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들의 영혼과 뇌의 주파수가 '돈을 벌러 직장에 지각하지 않고 가야 한다'는 치열한 생존과 욕망의 채널에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존 본능이라는 주파수에 고정된 귀에는 바흐의 명곡도 그저 성가신 지하철 소음으로 들릴 뿐입니다. 이것보다 더 치명적인 잘못은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려는 이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들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맛이 그렇습니다. 맛을 보아야 맛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은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라고 선언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상실한 채, 자기 힘으로 돈과 권력을 쥐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고아의 주파수'로 살아갑니다. 하느님 나라의 유일한 주파수는 '사랑'인데, 그들은 애초에 남을 사랑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습니다. 사랑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내 힘의 한계에 부딪힐 일도 없고, 한계에 부딪히지 않으니 성령의 도우심을 청할 이유도 없습니다. 성령의 힘을 체험해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성령이 무엇인지, 어디에 계신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에 갇혀 있는 자에게 성령의 위대한 사랑과 진리의 숨결은 그저 무의미한 소음이나 환상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이 사랑의 플러그를 꽂지 않고 꼼수로 전기를 훔쳐 쓰려는 자의 비참한 최후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하자 그들에게 성령이 내려옵니다. 이것을 본 마술사 시몬은 그 놀라운 권능을 탐내며 사도들에게 돈을 내밉니다. "나에게도 그런 권한을 주어, 내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 주십시오." (사도 8,19)
시몬은 세상의 주파수(돈과 권력)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사랑하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성령의 능력만 외장 배터리처럼 사려고 했습니다. 희생과 순종, 이웃 사랑이라는 '플러그' 없이 돈으로 전력을 끌어다 쓰려 한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대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사도 8,20)라며 무섭게 저주합니다. (출처: 『주석 성경』 사도행전 8장). 성령은 결코 세상의 얄팍한 거래로 수신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닙니다. 자아를 부수고 십자가의 계명, 곧 사랑에 나를 끼워 맞출 때만 접속되는 숭고한 신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가짜 주파수를 끊어내고, 어떻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수신하여 내 영혼의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완벽한 전환 스위치를 오늘 복음 첫머리에 명확하게 제시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바로 '사랑의 계명 안에 머무는 실천'입니다.
이 원리를 현대 공학의 '무정전 전원 장치(UPS)'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UPS는 병원 수술실이나 대형 서버실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장비입니다. 외부의 메인 전력이 갑자기 끊어지는 정전 사태가 발생해도, UPS는 0.1초의 오차도 없이 자체적인 무한 전력을 공급하여 생명 유지 장치나 컴퓨터가 꺼지지 않게 막아줍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 영혼 내부에 장착된 하느님의 무정전 전원 장치입니다. 내 인간적인 인내심과 사랑의 능력이 바닥나서 절망이라는 끔찍한 정전이 닥쳤을 때, 성령은 내 영혼이 타죽지 않도록 무한한 은총의 전력을 공급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물리적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수백억 원짜리 최고급 UPS가 설치되어 있어도, 전자제품의 플러그가 그 장치의 콘센트에 꽂혀 있지 않다면 정전이 일어났을 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켜라"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귀찮게 하려는 구속이 아닙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억울함을 십자가로 봉헌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는 그 '사랑의 실천'은, 내 영혼의 플러그를 성령이라는 무한한 발전기에 물리적으로 꽂아 넣는 유일한 접속 행위입니다.
저는 성령님의 존재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이 언제나 ‘성체조배’입니다. 나는 가지이기 때문에 나무에 붙어있으면 그 수액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맺히는 열매를 보면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사제가 아니면 이만큼 성체조배를 할까요? 안 할 것입니다. 저는 성체조배를 통해 강론도 준비해야 하고 그 에너지로 신자들을 대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 하기 때문에 성체조배를 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성령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그 일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그러면 성령님을 만나게 됩니다. 
1973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님과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죽어가는 빈민들이 넘쳐났고, 고아원과 병원에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수녀들은 잠잘 시간조차 부족했습니다. 수녀들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고, 육체적 피로와 우울증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능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도, 내면에 짜증과 한계가 차올라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세상을 경악게 할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수녀회의 모든 수녀는, 매일 아침 성체 앞에서 1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거룩한 머무름(Holy Hour)'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주변의 신부님들과 봉사자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녀님, 지금 밖에서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할 1분 1초가 부족한데, 하루에 1시간을 가만히 앉아 버리다니요!" 하지만 마더 테레사의 결단은 단호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체 앞에 머물며 주님의 사랑을 수혈받지 못하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고갈되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원천이신 분 곁에 무릎을 꿇고 멈춰 서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매일 아침 성체 앞에 1시간을 조용히 '머무르기' 시작하자, 며칠 뒤 수녀들의 얼굴에 다시 빛이 돌아왔습니다. 1시간의 노동 시간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혼에 성령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공급되자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효율성과 사랑의 깊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놀랍게도 그해부터 사랑의 선교회에 입회하는 성소자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주님께 철저히 머무를 때만 타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어진다는 것을 수녀회의 역사로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캐서린 스핑크, 『마더 테레사 전기』)
교부 성 베르나르도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사랑의 불꽃을 피우려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저 마른 장작이 되어 타오르는 그리스도의 용광로 안에 던져져 조용히 머무르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불이 당신을 태워 당신 자체가 뜨거운 사랑의 불꽃이 될 것입니다." (출처: 성 베르나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