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복음 특강] 성체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I 전삼용 요셉 신부님(수원교구)2025.6.22 천주교/가톨릭/신부님강의/가톨릭/신부님강의/가톨릭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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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 성체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요즘 이해하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신비가 삼위일체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잃어버린 가장 큰 은총이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사실 이 둘은 가장 큰 진리와 은총입니다. 진리와 은총이 주는 열매가 믿음입니다. 아기는 부모님의 진리, 곧 부부 관계의 모범, 그다음은 그 부모가 주는 은총인 양식과 보호를 통해 자신도 부모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동물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진리와 은총이 힘을 잃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지난주에 말씀드렸으니 오늘은 성체성사가 왜 힘을 잃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체성사가 힘을 잃은 증거는 성체성사를 영하는 것과 영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신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평화방송 TV를 보고 미사 하는 것과 성당 와서 성체를 영하는 것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는지, 삶의 에너지가 다 떨어지게 되는지를 느낀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성체를 영하러 성당 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이유는 그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 주일미사에도 그렇게나 많이 빠지고 냉담이 많은 것입니다.
은총이 힘을 잃는 가장 큰 이유는 말씀이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말씀에 싸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은총이 초콜릿이라면 이것이 녹아서 흐르지 않게 싼 포장지가 말씀입니다. 말씀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은총이 와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걸으시며 성경을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가슴 뜨겁게 듣고 나서야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은총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오셔서 나중에 성령님을 보내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씀에 너무 관심이 없습니다. 성물방만 봐도 그렇습니다. 성물, 곧 은총과 관련된 것들은 많은데 책들은 거의 없습니다. 책이 없으면 성물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은총은 말씀을 통해 온 사명에 힘을 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술을 한 번 마시면 멈출 줄 몰라서 많은 사고를 치고 싸움도 하며 자신도 모르게 문제를 일으키며 사셨습니다. 성지순례 중에 루르드를 갔습니다. 전날도 양주 한 병을 혼자 다 마셨지만, 성모님 성지에서 하루만이라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정말 성모님의 도움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마시지 않았으니 다음 날도 안 마셔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몇 년째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저를 만나러 와서 제가 술을 마셔도 그분은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으십니다. 가장 행복해하는 것은 자매님입니다. 자매님은 술을 마시지만, 그걸 보면서도 형제님은 술을 마시지 않으십니다.
성체성사는 마치 이 형제가 루르드에서 받은 은총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이 만약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결심이 없었다면 효과가 있었을까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광야에서 빵을 주신 기적인데, 만약 그들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그 외진 곳까지 오지 않았다면 그 기적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항상 은총은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은총은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성취될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와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이것이 성체와 성혈의 상징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은총이 주어졌을까요? 만약 그들이 모세를 따르지 않고 이집트에 머물렀다면 만나를 통해 얻는 힘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아만이 치유의 은총을 받은 것도 엘리사의 말을 들으려고 했기 때문이고, 성모님도 성령으로 잉태하시게 된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주님의 종이라고 하시며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체가 나에게 힘을 주게 하도록 말씀과 친해지십시오. 개신교가 ‘말씀만으로’라는 기치를 들고 생겨났기에, 가톨릭은 우리는 ‘성사만으로’라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전례인 강론이 조금만 길어도 신자들이 힘들어합니다. 강론을 듣지 않아도 성체만 영하면 미사를 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강론은 성체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강론이 죽는다면 성체도 죽습니다.
성체를 영할 준비는 평소에 말씀을 읽으면서 사명을 찾고 매일 무언가 받은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최고급 식재료(성체, 은총)가 있다고 해도, 레시피(말씀)와 요리를 만들겠다는 의지(사명)가 없다면 그저 냉장고 속 재료에 불과합니다. 레시피는 각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고 조합해야 훌륭한 요리가 되는지 알려줍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은 '성체'라는 은총을 우리 삶에 어떻게 통합하여 맛있는 신앙의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려주는 레시피와 같습니다.
혹은 의사와 처방전의 비유도 좋겠습니다. 몸이 아픈 환자에게 의사는 병을 진단하고 약과 함께 생활 습관 개선을 지시하는 처방전(말씀)을 줍니다. 약(은총)이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믿고, 제때 약을 먹으며 생활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사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처방전을 무시하면 아무리 좋은 약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체성사도 우리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의 처방전을 따를 때 최고의 효능을 발휘합니다.
영화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에게 "나는 자네에게 문을 보여줄 뿐이네. 그 문을 통과하는 것은 자네 자신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는 매트릭스의 진실(말씀)을 알려주고, 네오가 인류를 구할 '그(The One)'라는 '사명'을 제시합니다. 네오가 그 말을 믿고, 두려움을 넘어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행동했을 때, 비로소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체는 말씀을 통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여행자를 위한 양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말씀으로 오늘의 사명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