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2025년 교구장 부활 메시지 |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요한 20,21)_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

松竹/김철이 2025. 4. 20. 10:10

2025년 교구장 부활 메시지 |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요한 20,21)_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요한 20,21)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기쁨이 온 세상 모든 이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특별히 분쟁과 전쟁으로 불의와 억압, 분열과 소외의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부활하 신 주님의 참 평화와 위로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 니다.

 

우리는 2025년 ‘희망의 순례자’ 희년에 주님의 부활 을 맞이했습니다. 이 희년에 맞이하는 부활은 더욱 큰 기 쁨과 깊은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특히 희망에 관하 여 묵상하게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요란한 사건으로 보도하 지 않습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서 화려하고 위 풍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식의 부활 발현 이야기는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저 ‘빈 무덤’의 표상 을 통해서, 실패의 좌절과 슬픔 속에 주저앉아 있는 이 들 곁에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그것은 온유한 승리이며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는 구원의 신비입 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별과 상실의 슬픔 속에 울 고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그 이름을 불러주시며 당 신 현존을 드러내십니다.(요한 20,11-18 참조) 이렇듯, 지금 삶의 온갖 시련으로 아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 옆에 부 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조용히 현존하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떠나보 낸 실망 속에 침통한 마음으로 엠마오를 향해 가던 제자 들의 마음을 당신 말씀으로 뜨겁게 타오르게 해주십니 다.(루카 24,13-35 참조) 이렇게, 지금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인생 여정에서 온갖 실패와 실망을 겪으며 힘겹게 걸어 가는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십니다. 또한 말씀과 성찬의 나눔을 통해 우리의 닫혔던 눈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마 음이 벅차오르게 해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숨어서 문을 잠그고 무서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다가와 평화의 인사를 전해주십니다.(요한 20,19-23 참조) 또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어부들에게 나타나시어 먹을 것을 준비해 주 십니다.(요한 21,1-14 참조) 이는, 그분께서 사회 안의 여러 분열과 갈등의 긴장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 게 참 평화를 선사하시고, 불안과 불신의 밤을 지새우며 헛수고에 지쳐버린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힘을 주심 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군사적 갈등과 긴장 속에서 분쟁과 전쟁의 아픔 을 겪고 있는 세상을 보며, 또 빈곤과 질병의 세계적 고통 과 전 지구적인 극심한 기후 위기, 그리고 사회 공동체의 분열과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어떤 이들은 묻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과연 어디에 계시느냐고 말입니다. 그분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도 왜 세상의 어둠은 변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시련 속의 우리 곁에 신 비로이 현존하신다는 믿음과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 우리의 현실적인 고통을 당장에 없애주거나 마술 같 은 모습으로 해결책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 예수님 부활의 신비를 지금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 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인류의 고통과 함께하시며 이 세상을 구원하고 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 망을 자아냅니다.”(로마 5,3-4)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를 만나 구원을 체험하는 것은 바로 희망을 통해서입니 다. 시련 속의 인내와 수양을 통해서 우리는 이 희망을 다 져갑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입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 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 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최근 우리 사회는 희망이 위협받는 듯한 어려운 시 기를 보냈습니다. 계엄 선포로 시작된 깊은 혼돈과 정치 적 혼란은 국회의 계엄 해제 선언,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의 과정을 이어가면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 고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도 통합 보다는 정파적 갈등과 상호 비난이 계속되며 분열의 고 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우리 국민들은 경 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선명한 시민의식으로 연대를 통해 희망을 일 궈 나가는 여정에 한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 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어둠을 넘어서는 희망과 확신입니다.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진정으 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 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어려움은 결 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희망을 품고 확신 속에 연대한다면, 이 난관 또한 극복할 수 있으 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희망의 위대함에 새롭게 눈떠야 합니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 도저히 생 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강한 확신, 그래서 현실의 불의와 질곡을 뛰어넘는 위대한 복음의 비전, 곧 하느님의 사랑 을 우리는 지금 선포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실망케 하고 좌절시키는 여러 사건과 상황 속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의 제목처럼, 결코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 지 않습니다.”(로마 5,5) 오늘의 부활 체험은 보이지 않는 것 을 희망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삶의 기대와 희망을 상실한 이들에게, 또 삶의 참다운 가치가 실종된 세상에 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 희망의 복음을 전합니 다. 이제 하느님의 약속을 향해 온 인류가 ‘함께 걸어가는 길’(시노드)에서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특별 히 이 희년 동안, 우리는 인류의 여정에서 희망의 용감한 증인, 곧 하느님 자비의 선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부활의 신비를 전하는 “여러분을 믿음에 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 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께서 힘든 풍랑을 헤치며 나아 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며, 주님 부 활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