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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빛이 되려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하는 게 핵심, 사순 제5주간 월요일, 2025 04 07

松竹/김철이 2025. 4. 7. 07:00

[빛이 되려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하는 게 핵심]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4 07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l0-DxHmVnU0

 

 

 

2025년 다해 사순 제5주간 월요일 – 빛이 되려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하는 게 핵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갈 길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장 폴 사르트르의 ‘출구 없는 방’이란 극본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는 명제로 유명합니다. 그가 타인은 지옥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 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을 ‘출구 없음’(No Exit)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출구 없음’의 연극 대본을 봅시다. 
설정은 신비한 방으로, 주인공들이 죽음 이후 일종의 사후 세계 역할을 합니다. 이 방은 거울, 창문 또는 탈출 수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캐릭터가 소개됩니다. 
‘가르생’은 언론인이자 평화주의자입니다. 가장 먼저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을 영웅이자 순교자로 소개하지만, 실상은 겁쟁이요 배신자였습니다. 다음 ‘이네스’가 등장합니다. 레즈비언 우체국 직원인 그녀는 교활하고 잔인했습니다. 마지막 ‘에스텔’은 외모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 여성으로 가장 늦게 도착합니다. 그녀는 연인과 자신이 낳은 아기를 죽인 사실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전생과 저주받은 이유를 천천히 드러내면서 연극이 전개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얽히면서 드라마는 더욱 강렬해지고,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합니다. 가르생은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방을 떠나고 싶어 하고, 이네스에게 자신이 영웅처럼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레즈비언인 이네스는 에스텔을 유혹하려 합니다. 
에스텔은 유일한 남성인 가르생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소용이 없었고 끊임없는 좌절과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극은 등장인물들이 영원히 심리적 고통 속에 갇혀 서로나 자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들의 고통은 출구가 없습니다. 빛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욕망을 제어할 줄 알아야만 참 평화를 가질 수 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욕망은 ‘생존’을 위한 욕구인데, 그것을 제어함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블랙스완’에서도 엄마가 자기 욕망을 버리지 못해서 빛이 되지 못했고 딸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사랑이란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빛이 되는 법을 알려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욕망을 죽여야 함을 보여준 본보기가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빛을 보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상의 빛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파견받으셨듯이, 우리는 그리스도께 파견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와서 다시 그분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는 우리가 빛입니다. 
그러나 빛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또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살면 그렇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일까요? 이 세상에서 무언가 필요한 존재처럼 살 때입니다. 빛은 빛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태양이 지구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그것은 창조자에게서 나왔고 빛나는 일을 끝낸다면 다시 창조자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의 특징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무엇을 요구할까요? 요구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다 해주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들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아직 빛이 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가리옷 유다가 그렇습니다. 그는 빛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바라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진정한 해방은 욕구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렇게 빛이 된 존재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설리번 선생’일 것입니다. 앤 설리번은 1866년 4월 14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뉴 윌밍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앤지 앤 설리번(Anne Sullivan)이었고, 그녀의 가족은 매우 가난하고 불행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앤은 어린 시절부터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며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앤이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시절 앤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격 속에서 살아가며 정서적 상처를 받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결핵을 앓으며, 나중에는 트라코마라는 안구 질환에 걸려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앤 설리번의 불행은 그녀의 어린 시절에 그쳤다면 더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병동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앤은 15세 때,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부모의 동의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이 시기 앤은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려고 애썼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당시의 정신병동 환경은 매우 열악했으며, 치료보다는 억제와 처벌이 주를 이루었고, 앤은 치료의 희망을 잃고 결국 삶에 대한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선, 주변에서의 인정과 치유보다 자신의 의지와 인내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그녀는 스스로를 일으키며 치료를 시작할 결단을 내립니다. 이때 그녀를 도운 인물 중 중요한 인물이 바로 로라라는 나이 든 간호사였습니다.
로라는 앤이 정신병동에 있을 때 만난 간호사로, 앤에게 정신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로라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였지만 그 당시까지는 실직적인 치료보다는 정서적인 지원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 일하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앤의 내면적인 고통을 깊이 이해했고, 앤에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로라는 앤에게 "너는 결국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그녀의 자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독려했습니다. 이 인연은 앤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녀는 로라의 말대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길을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로라의 영향을 받으며 앤은 퍼킨스 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점차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나갔습니다. 앤은 장애인 교육에 대한 열정을 품고, 스스로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1887년,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와 만나게 됩니다. 헬렌 켈러는 1880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열병에 걸려 청각과 시각을 모두 잃었고, 그로 인해 언어와 의사소통에 전혀 능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헬렌의 부모는 절망에 빠져 있었고, 그들은 헬렌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헬렌의 부모는 앤 설리번을 만나게 되었고, 앤은 헬렌의 가정에서 가르침을 맡게 되었습니다.
앤 설리번은 헬렌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내면에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끊임없는 사랑과 인내로 헬렌에게 언어와 소통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앤은 헬렌에게 수화와 점자를 가르쳤고, 특히 손끝으로 세상을 느끼는 방법을 제시하며 그녀의 삶을 바꿔나갔습니다. 헬렌이 '물'이라는 단어를 이해한 순간, 그녀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고, 이는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이었습니다. 앤의 교육 덕분에 헬렌은 점차 언어를 배우고, 그와 함께 수학과 작문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헬렌은 라드클리프 대학(Radcliffe College)을 졸업하며, 그 후에는 작가이자 강연자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인권 운동가로도 유명해졌습니다.
앤 설리번은 헬렌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한 것을 넘어서, 그녀에게 사랑과 희생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헬렌은 앤 덕분에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앤 설리번은 자신의 힘든 과거를 극복하며 헬렌 켈러에게 사랑과 교육을 베푼 결과, 헬렌은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헬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로 가득 찬 삶이다”라고 말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로라는 빛이었습니다. 그녀는 무언가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빛이었습니다. 로라는 노년의 간호사로서, 앤의 정신적 고통과 어려움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녀에게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앤에게 과자를 가져다주고, 책을 읽어주며, 기도해주는 등 정서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바라지 않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빛이고, 빛을 만난 사람입니다. 재물이나 욕정, 명예 등을 원한다면 아직은 빛을 만난 것도 아니고 빛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아직은 누구에게서 와서 누구에게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빛은 자기 욕망을 태워서 어둠에 있는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을 태우는 촛불과 같은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