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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 성당 주임) | 사순 제2주일 복음특강 | 타볼산에 오르는 법, 2025.3.16

松竹/김철이 2025. 3. 16. 07:00

[사순 제2주일 복음특강] 타볼산에 오르는 법 I 전삼용 요셉 신부님(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 성당 주임) 2025.3.16 천주교/가톨릭/신부님강의/가톨릭스튜디오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LnjESxf8Hio

 

 


2025년 나해 사순 제2주일 – 타볼산에 오르는 법

 우리는 모두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뵈옵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딱 맡기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표징’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 얼굴을 뵈옵자고 하는 사람들을 악하다고 하십니다. 
저도 사제가 되라고 불러주실 때, “그럼 먼저 당신 얼굴을 보여주세요~!”라고 청했습니다. 그게 정말 성모님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분께서 성모상에서 당신을 나타내 보이셔도 저는 “내가 술을 마셔서 헛것을 봤지!”라고 생각해버렸습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마음은 순종하고 싶지 않은데 그 핑계를 하느님께 대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느님 탓만 하는 것입니다. 복권은 사지 않고 복권에 당첨되면 믿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나를 타볼산 꼭대기까지 데려다줄 이를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변모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모하시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하늘에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자들은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김흥순 자매는 불교 신자였습니다. 장이 유착된 상태여서 음식을 넘기지도 못하고 다 게워내며 걷지도 못하는 극단적 상황이었습니다. 유명한 병원엔 다 다녀봤지만 수술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진단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병원에서는 수술하면 2~3년, 길면 5년은 더 살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수술이 두려워서인지 이미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이 설득하자 자매는 자신들을 위해 고생하는 수녀들 인생이 참 딱하다고 말했습니다. 수녀님은 딱한 수녀 말 한 번만 들어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대세를 받고 수술도 받아보겠다고 했습니다. 데레사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고는 “나는 무조건 하느님을 믿습니다.”라고 선포하고 다녔습니다. 

 수술실에 들어설 때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인자한 모습으로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들 사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마치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의사가 자신을 분명히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그렇게 수술을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깨어나서는 수술받을 때 자기 발 쪽에 서 계셨던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수술실에는 모두 청색 가운을 입게 되어 있어서 흰색 가운 입은 의사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매는 빠른 속도로 회복하였습니다. 두 달 후 교리를 받고 정식 세례를 받았습니다. 병자성사를 받을 때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짐을 느꼈고 걷지도 못했던 그 자매는 기쁨에 취해 병실을 두 바퀴나 돌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실에 들어선 자매는 감실 쪽을 보더니 “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얼마나 찾았는데요. 저를 치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는 기적적으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사람이 기적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을 들으며 퇴원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수녀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잘 사신다고 합니다. [출처: 『내 가슴에 살아있는 선물』, 이영숙 베드로 수녀, 비움]

 이영숙 베드로 수녀는 예수님과 같이 말을 듣기만 하면 타볼산에 오를 수 있게 하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였습니다. 파견된 자의 특징은 사랑을 위해 고생한다는 것입니다. 파견된 자는 마치 아이에게 엄마와 같습니다. 엄마를 믿지 못하면 아빠는 자동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엄마를 파견한 아빠의 사랑은 더더욱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하느님 신성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괜한 고생을 하는 분”이십니다. 그런 고생은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명과 힘을 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는 이들은 반드시 주님의 얼굴을 뵐 수밖에 없습니다. 별을 따라오다 보면 구유의 메시아를 볼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하.사.시.’를 읽게 된 것이, 그 책을 쓴 ‘마리아 발토르타’란 분을 보면서였습니다. ‘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시는 분이 살아생전에 영광도 보지 못했는데 수만 페이지에 해당하는 광대한 예수님의 생애를 썼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사도들의 삶에 저도 순종하였고 그렇게 “다 주시는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예수님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랑으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고생하는 새로운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말을 듣고 순종한다면 우리는 분명 타볼산에 있게 될 것이고 그 가운데서 모세의 말씀도 듣고 엘리야의 은총도 받으며 밝게 빛나는 하느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별을 존중하고 공경하지 않는다면 구유의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