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전삼용 요셉 신부님 |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핏줄과 나라까지 배신해야 한다면, 그래도 믿을 것인가? | 성모 신심 미사, 2025 02 01

松竹/김철이 2025. 2. 1. 07:00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핏줄과 나라까지 배신해야 한다면, 그래도 믿을 것인가?] 성모 신심 미사,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2 01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86czyfuTF0E

 

 

 

2025년 다해 2월 성모 신심 미사 –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핏줄과 나라까지 배신해야 한다면, 그래도 믿을 것인가?

오늘은 2월 성모 신심 미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뜻에 인간의 뜻이 경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핏줄을 넘어 나라로 확대된다면 어떨까요? 자기 핏줄을 거부한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광암 이벽 성조는 정약용이 존경하던 친구로서 뛰어난 학식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벽 성조는 가문의 반대로 아버지로부터 감금당했고 독살당했다고까지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큰 박해가 시작되었고 이에 가담한 정약용도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약용이 두 번째 유배를 가게 된 사유 또한 천주교 때문입니다. 바로 조카 사위인 황사영 때문이었습니다. 황사영은 정말 믿음 때문에 가문은 물론 나라까지도 배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황사영 백서는 조선에서,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중국 로마 가톨릭교회 북경 교구의 주교에게 혹독한 박해를 받는 조선교회의 전말 보고와 그 대책을 흰 비단에 적은 밀서입니다. 황사영은 토굴속에 숨어지내며 정세를 파악하던 중 교회의 머리인 주문모, 정약종, 이승훈, 최창현, 강완숙, 최필공, 이존창, 유황검 형제 등 다수가 처형당했다는 비보를 접합니다. 이에 이런 탄압의 전말을 북경 주교에게 알리고, 주문모 신부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부각해 청나라 조정의 도움을 끌어낸다면 박해를 종식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엔 청나라 종녀 1인을 공주로 삼아 조선 왕과 결혼케 함으로써 국왕을 부마로 만들면 다음 왕은 청국 황제의 외손이 되므로 자연히 청국에 충성을 바치게 될 것으로 생각을 밝혔습니다. 또는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할 것, 심지어 조선은 2백 년 이래 평화가 계속되어 백성은 전쟁을 모르니 조선에 배 수백 척과 강한 병사 5~6만 명으로 대포, 군물들을 싣고 와서 선교의 승인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과 서양 전교대를 조직하여 와서 선교사의 포교를 쉽게 할 것 등입니다. 
백서가 중국에 전달되지 못한 채 1801년 9월 15일에 제천 배론에서 체포되었고 9월 26일에 황사영도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국청이 열리고 혹독한 심문을 받은 황사영은 11월 5일에 대역죄로 서소문 밖에서 온몸이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그의 일가족은 물론 종들까지도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또한 황사영이 극형을 당한 다음 날 그의 집을 헐어 버리고 웅덩이를 파서 물이 고이게 했습니다. 
황사영이 정약용 형제의 조카사위였기 때문에 사태는 심각했습니다. 노론 벽파의 홍낙안 등은 “천 사람을 죽여도 정약용 하나를 죽이지 못하면 아무도 죽이지 못한 것과 같다.”라며 이번 기회에 정약용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관련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노론 벽파 내 의견이 갈리면서 극형은 면하게 되었습니다. 정약용은 강진, 정약전은 흑산도로 다시 유배를 떠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정약용이라 생각해봅시다. 기중기를 최초로 이용해 수원성을 만들고 수백 권의 책을 쓸 정도로 국가의 인재였습니다. 그는 분명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문과 국가를 생각하기로 하고 배교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믿음이 없다고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요? 

나이팅게일은 간호학이라는 새로운 간호의 비전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녀 덕분으로 간호 학교들이 최초로 생겼습니다. 부상한 군인의 40%가 사망했지만, 그녀가 간호 시스템을 정비하자 4%로 떨어졌습니다. 문제는 그녀는 아군만 살린 게 아니라 다친 적군도 살려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행위는 전쟁에서 역적이 될 수도 있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생명’ 앞에서 핏줄이나 나라, 이념 따위는 의미를 잃습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원수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면 바라만 봐야 할까요? 아버지에게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구하는 게 도리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어떤 가치도 그 믿음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경쟁자로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시며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보면 역적이자 매국노라 불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굳이 어떤 나라에 지배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오네시모라는 도망친 노예를 돌려보내며 주인에게 충실해지라고 권고합니다. 링컨은 노예제도를 폐지해서 존경받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믿음에만 유익하다면 체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지금은 너무도 종교가 현세화 되어갑니다. 종교가 가문이나 나라의 뜻에 배치되면 조선시대 때처럼 사교로 박해당합니다. 마치 이 세상이 영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살 세상은 천국이지 이 지상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언제라도 이 지상의 핏줄이나 애정, 혹은 나라가 믿음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문의 원수나 매국노라도 불려도 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핏줄이나 나라를 사랑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참믿음을 잃은 나라는 현세에서부터 지옥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