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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111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11. 11. 07:54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11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ZmtrZuZhLjs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 세상을 모르실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느님의 눈 앞에 언제나 ‘심판’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동시에 우리는 늘 잘못과 함께 산다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도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았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렇다고 이 죄를 완전히 피해가는 이들은 또 없습니다.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예수님의 공생활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용서’가 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이 죄에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다른 표현으로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죄를 짓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데 예수님은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말씀으로 자신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잘못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 훨씬 무거운 것으로 설명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면서도 남의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불행을 위안 삼거나 혹은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안위를 구하려는 이들에게 주님은 그 죄가 얼마나 큰지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생각과 자세를 알려주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우리의 선택지는 둘 밖에 없습니다. 꾸짖거나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도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를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기에 하느님도 우리를 대하실 때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심판’이라는 것을 들이대지만 예수님은 그 기준을 이렇게 세우십니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작은 이를 되찾고 웃게 해 주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0:00   오늘의 복음
1:33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