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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911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9. 11. 07:44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91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3BhEhkqkgK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말씀 중 가장 혼란스러운 말씀 중 하나가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인 듯 싶습니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그러하고, 행복하다는 것은 분명한 의미를 알지만 그 대상이 되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더욱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스스로 원해서’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더 정확히는 가난하게 사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가난을 말하는 이유는 사람의 근본에 가깝게 산다는 수도자들의 설명과 함께 신앙인들에게는 주님을 따라 살기에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곧 가난한 모습이 아니라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주님만으로 행복하게 사는 삶이 ‘가난’의 진짜 의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의 시선을 보면 세상 가난하게 살아가는 힘겨운 이들도 이 대상에는 포함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난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싫어하는데도 분명히 주님의 행복안에 그들이 있음은 비켜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고민이 됩니다. 가난하게 사는 복음적 삶은 좋은데 현실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을 무조건 추구하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 하다는 것입니다. 이 가난은 빈곤함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또 이것으로 사람됨을 잃을 상황에 놓인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다른 뜻으로 아무리 해석하려 해도 가난한 이들에게 허락되는 하느님 나라의 의미 중 그들의 수고와 불안함에 대한 위로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세상에서 그들의 소중한 삶을 빼앗고 가난으로 내 몰고 고정시키며 동시에 그들의 노동과 수고를 이용해 자신의 부를 누리는 이들의 잘못도 또한 포함됩니다. 세상을 우리는 그렇게 만들기를 계속 반복해왔고, 그 잔인한 놀이와 같은 일을 지금도 우리는 너무나 태연하게 벌이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행복선언은 하느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위로와 동시에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의 ‘불행선언’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가난이 복음적 가난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복음적 가난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만큼 주님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스치듯 지나는 주님의 말씀 하나가 머리를 울립니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이가 힘겹게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법대로 살고 진실하고 순하고 선하게 사는 이들이 힘든 것은 그때도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2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