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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908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9. 8. 07:51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908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6KPUaRqEC90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23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전지전능의 하느님을 떠올리는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서 은총을 보기도 하고 느끼기도 합니다. 꼭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간접적인 체험마저도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게 하는데 효과를 크게 발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능력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보다 사람에게 더 매력적입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사람들이 데리고 온 사람은 귀먹고 말을 더듬었다 말합니다. 듣는 것에 문제가 있기에 말하는 것은 당연히 온전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는 의사소통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더듬지만 그 말조차 들을 수 없는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정상이라 말하는 방식에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장애를 지닌 사람과 하느님이 만났을 때 우리는 당연히 기적을 기대합니다. 사람들도 그런 주님의 능력을 알았기에 그를 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각은 그 때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집니다. 주님이 그를 낫게 하시는 것을 기대하는 시선과 주님 앞에선 본인으로 말입니다.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예수님은 그를 데려온 이들에게서 분리시키십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십니다. 우리 눈에는 불필요한 과정입니다.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이 작은 행동 뒤로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이 바로 붙어 이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장면을 이 말씀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에파타는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입니다. 우리에게 이 말과 내용은 기적의 소리인 셈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먼저 기적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이 소리는 그에게는 필요 없었던 부분입니다. 그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준에서 이 기적은 기적 후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우리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의 손을 끌어 따로 세우시고 그의 아픔을 직접 만져 기적을 이루신 주님입니다. 그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주님의 에파타라는 말이 들렸을 뿐입니다. 곧 주님이 기적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그가 이제 듣게 되었음을 알려주신 주님의 신호였던 셈입니다.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은 자신의 능력 전에 사랑부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 이전에 그 한사람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마음을 볼 때입니다. 그렇게 실제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필요한 가치가 되어 주시는 주님은 그에게 이웃까지 함께 선물하십니다. 

에파타를 듣는 이는 그래서 주님만이 아니라 주님이 낫게 하신 이 사람을 함께 마주할 수 있도록 그에게 세상의 올바른 소리를 더욱 잘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것이고, 사랑이 행복과 기쁨이 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에서 이미 완전한 이유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3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