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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803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8. 3. 08:21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80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PrvFg56lCi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세상은 예전부터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의 삶에 빗대어 이해하려 드는 습관을 보입니다. 특별히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며 표현하고 또 그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하느님의 결정으로 만들어 고정하려는 시도도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심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린 일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주님의 뜻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주님에 대한 시선에도 우리의 오랜 고집은 자주 발견됩니다.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오늘 헤로데 영주를 혼란스럽게 한 주님은 그 반대편에 세례자 요한과 놓여져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주님은 동시대에 있었던 인물이었으나 그 때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요한은 유명인이었고 예수님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주님을 그분의 이름으로 기억하거나 존중하지 못합니다. 통치자와 낮설 정도의 가치인 세례자 요한과 나자렛에서 올라온 목수를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요한에게 일어난 마지막 사건은 불행하지만 동시에 요한의 가치를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요한의 생명은 헤로데의 자존심과 맞바꾸어집니다. 그의 가르침도 모든 것도 나무랄 것이 없었지만 헤로데는 그의 자존심에 그가 존경하는 요한의 목조차 베어버릴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치의 요한이었기에 세상에서 바라보는 구세주의 이미지에는 예수님보다 요한이 어울린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요한과 예수님은 헛갈릴 이유도 근거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요한을 희생시킨 헤로데가 주님의 소문을 듣고 바로 요한을 떠올렸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름도 남기지 못하는 인물로 사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의 시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결국 돌아가실 때도 주님은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울림은 모두를 요르단강으로 끌어들인 요한의 사자후와는 달랐습니다. 주님은 기다리거나 모으시지 않으셨고 늘 다니시며 다가가셨고 하느님의 말씀에 멀리 있다 생각한 이들로부터 신앙의 중심인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조건에 가까운 이들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누군지 보여주시며 모두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당신 삶의 방향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주님과 요한을 혼동한 헤로데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의 시선이 바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선입견에 갇힌 이들은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더 멀리서 보는 이에게 두 분의 공통점이 보였으니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2:02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