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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707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7. 7. 07:39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707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QDDeBWXsxKY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14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엄친아’라는 말이 한 때 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가깝께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들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냥 상식처럼 사람을 구분짓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저 남을 부러워하던 말이 사람을 그냥 규정 짓는 말로 변해가는 동안 우리 역시도 그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정하는 이런 기준들은 모두가 정해지거나 불변하지 않다고들 말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딱히 그렇게 변화를 인정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잔인하게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도 낯설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시기 때문에 그분이 성장하신 곳에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접한 이들은 그 말씀에 살아있는 권위를 느낍니다. 세상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말씀으로 처음 놀란 그들이 두 번째로 놀랍니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이후에 추가되는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이런 놀라움을 뒷받침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엄친아’가 될 수 없는 사람이고, 또 금수저와는 아예 상관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가면이나 분장도 없이 자신을 속이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는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이 때 이미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인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의 이야기를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그들의 눈은 가려졌고, 그들의 귀도 막혀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나자렛 사람 예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편견은 얼마나 무섭습니까? 2천년이 지나도 우리는 주님의 진실에 조금도 가깝게 가려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모습은 ‘겸손’이라는 단어로 묻혀버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사는 공간과 시간과 환경 안에서 우리를 규정해버리고 맙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우리를 보여줍니다. 자신들에게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 이들은 늘 자신 밖의 것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혹여 그 구질구질한 인생들 속에 행운이라도 얻은 듯한 사람들은 이내 그것으로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버리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떡잎으로 자신을 만듭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와 그분이 왜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 동네의 목수로 사셨는지, 그리고 왜 그분을 그분 고향의 이름으로 죽여야 했는지 지금 우리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도 더욱 분명해집니다. 

엄친아, 금수저. 혹은 흙수저라는 말 속에 사람을 가두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 역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2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