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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505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5. 5. 08:06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50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41Ny5bEHtV4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부활 제6주일(생명주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슷한 말씀이 계속 반복되는 복음을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도 예수님 안에 계시듯 우리도 그러하길 바라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삶이 살아있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였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은 믿음의 정도가 아니라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이런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마음에 예수님의 삶이 어떤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모습도 내용도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나 당신의 삶을 ‘사랑’이라는 단어에 담아 주셨고 또 ‘기쁨’이라는 말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삶은 우리에게 때로 ‘용서’ 혹은 ‘평화’라는 말로도 드러납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라고 말하기도 하고, 마치 고통의 세계에서 예수님이 단련을 받으신 듯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언제나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하시는 주님도 모자라지만 그분 곁에 있었던 이들도 고통 받은 적은 없습니다. 주님은 사랑하셨고 그 사랑의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고 하느님에 대한 왜곡된 내용을 바로 잡았습니다. 주님은 어리석은 이들과 함께 하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기뻐하셨고 결코 그 곁을 떠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생애는 말그대로 ‘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의 삶의 진리를 계명으로 남기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하는 삶을 고통이라고 말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세상의 이치 위에서 예수님의 삶을 보면 일부분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이를 본다면 그 어리석음을 지적할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행복이요 기쁨이라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버리고서라도 지켜야 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결코 슬프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비록 땀이 흐르고 웃음이나 미소조차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라도 말입니다. 사랑은 기쁨이고 그 기쁨을 주시려는 주님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닌 계명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56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