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11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3. 11. 08:09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11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PqjopoA4_Z8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성경 속에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그것은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 조상들이 경험하고 들려준 하느님과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 고집스럽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어렵다는 이야기 속에는 그러기 ‘싫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이들로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이었으나 예수님께 그들이 원한 것은 눈에 보이는 놀라운 ‘표징’이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것 외에 그분의 말씀과 삶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표징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구경거리’가 될 뿐이었던 상황에서 ‘표징’과 같은 도움이 필요했던 이방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2천 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있는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론을 이미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글에 적혀 있지 않은 것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아이가 열이 떨어지고 나아질 동안 누구도 주님이 벌이신 이 일을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그렇게 된 듯 집에서 아이는 나아지기 시작했고, 그 동안 오로지 믿음만으로 집을 향해 바쁜 걸음을 한 왕실 관리의 발걸음만 있었습니다. 곧 예수님은 아이를 보지 않으셨고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거나 불러 일으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곧 ‘보이지 않는 표징’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구경거리’는 사라지고 ‘신뢰’와 그 ‘열매’가 드러납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와 아이가 지켜집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주님은 무엇이든 하셨습니다. 우리의 태도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어서 그분의 표징에 몰려드는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시는 주님에게는 이 표징이 그저 ‘사랑’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통해 스스로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를 기다리십니다. 심지어 당신이 죽게 되셔서도 그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0:00  오늘의 복음
2:40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