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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05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3. 5. 08:07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0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Ttbc6guEeQE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을 닮은 우리의 근본을 되찾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하느님의 바람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아예 포기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이 같을 리 없다는 것을 들어 나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하느님과 사람을 나누는 것을 상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나는 예수가 아니오’가 당연한 듯 말입니다.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주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었던 베드로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름 주님께 애를 쓰고 싶어서 묻습니다. 그가 물은 “일곱 번까지”라는 말은 여러모로 ‘그 정도까지’의 뜻입니다. 그렇게까지 용서를 해야 합니까?라는 의미가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말에서부터 용서의 기준을 정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사람의 모델은 다름아닌 당신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예수님은 이야기 한 편으로 들려주십니다.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잃어야 하는 만큼 터무니 없는 빚을 진 종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하자 임금은 그의 빚을 탕감해줍니다. 그야말로 일흔일곱 번으로도 갚지 못할 빚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빚진 사람을 보며 같은 처지의 어려움을 느끼고 싶지만 사실은 주인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델은 이 임금이니까 말입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이 사순시기에 십자가의 길을 통해 우리는 주님이 걸으신 죽음의 길을 묵상합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도 주님은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당신을 죽이려는 시도들은 베드로가 말한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런 그들 속에서도 주님은 그들이 내린 형벌에서 벗어나지 않으시고, 길에서 만난 어머니, 영문도 모르고 그분을 도운 시몬, 베로니카, 여인들 모두에게 위로와 감사를 표하시고, 수도 없이 넘어질때도 다시 일어나셨으며, 마지막 옷까지 빼앗기시고도 십자가에서 살인자들을 ‘그들은 모릅니다’라고 용서하십니다. 일흔일곱 번은 그렇게 현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이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현실이고 우리에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한계를 세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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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