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31120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wHTyHUy24e0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에 높고 낮음을 말하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늘 그렇게 사람들을 나누고 또 모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수평적인 경우는 참 드물고 대게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모두가 평등한 인격 안에서 상황과 필요의 유무에 따라 서로 돕는 사랑으로 표현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부터 우리는 사랑의 크기를 논하거나 중요함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로 알려진 이들 중 대다수 그 시작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어떤 ‘시설’이나 ‘단체’를 이루면 많은 경우 그 후에 그가 직접 그런 일을 지속하는 경우를 보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어느새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그가 한 행동을 몇 번이고 알리며 그 일의 가치가 곧 ‘그 사람’과 동일시되어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는 일은 참 ‘어렵고’ ‘대단한’ 일이 되고 맙니다. 오늘 길에서 주님을 향해 외치는 이에게 사람들이 했던 태도처럼 말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은 누군가를 구별하여 제외하거나 차례를 매기는 일을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그의 목소리가 주님의 귀에 들렸을 때 주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사람들이 입막음을 하던 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십니다. 그의 처지를 보면 무슨 도움이 필요할지 뻔한데도 주님은 그에게 직접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이 주는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에게서 원하는 것을 묻는 것은 어떤 시각에서는 불필요한 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심이라면 말은 전혀 달라집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눈먼 이로 구걸하는 이에게 우리는 당연히 그의 눈과 그의 더러워진 손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떠야 한다는 것과 돈이 다일 텐데 이 대화에서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다시’라는 단어입니다. 주님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들을 수 없었던 그리고 그저 주님의 능력에 칭송을 할 우리인데 주님은 그에게 그의 말로 답을 주십니다. 바로 “다시 보아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어려운 이의 사정에도 정작 필요한 것은 어려운 사람에게서 드러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0:00 오늘의 복음
1:50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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