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기준에서
권상우 베드로 신부님(연풍순교성지 담임 겸 연풍준본당)
교우분들이 종종 순례로 찾아 방문하시는 도심 외곽의 성지들은, 아무래도 일반 본당들보다는 면적도 넓고 그만큼 외부 관리에도 조금 더 손이 갑니다. 각종 풀과 나무들이 뒤엉켜 자라는 것 이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순례 오시는 분들이 정돈된 환경에서 편안한 순례를 하실 수 있도록, 환대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 여기며 수목전지와 제초작업 등에 신경을 씁니다.
그런데 풀을 깎고 관리할 때에, 어떤 것을 ‘잡초’라고 할까요? 어느 날 넓은 잔디밭을 제초기로 깎으려고 하는데 한쪽으로 노란 민들레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없었는데 어디에서 꽃씨가 날아왔던 건지, 어느새 꽤 여러 송이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 피어 있던 자리가 그냥 산과 들의 어느 곳이었다면 그 민들레들은 너무나 예쁜 ‘꽃’이었겠지만, 하필 그곳은 순례객 들을 위해 관리하던 잔디밭이었기에 그 순간 저한테 민들레꽃들은 뽑아내야 할 ‘잡초’가 되었습 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설명하시는 ‘가라지의 비유’ 말씀입니다. 밀과 가라지로 표현되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과 악한 자의 자녀들이 마지막 날에 어떠한 처분을 받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시며, 밀밭에 뿌려 진 가라지를 뽑지 말고 끝까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비유 말씀에 빗대어서 보면, 사람관계 안에서의 우리 모두는 각자가 좋은 씨앗에서 자라난 ‘밀’이라고 믿으면서, 그러지 못한 쭉정이인 ‘가라지’들은 거두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은 밀이라도 언제든 가라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삶에서 그렇게 바뀌는 일들은 몇 번이고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 왔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던 민들레꽃은 단지 관리자의 기준에서 한순간 잘려져 나 가야 할 잡초의 입장이 돼버렸습니다. 우리도 여러 상황에 따라서 각자가 처하게 된 사정이 다를 뿐, 너와 내가 다 르다고 나눌 이유도, 그런 너는 틀렸다고 비난할 이유도, 그래서 지금 당장 바로 잡아야 한다고 성급할 필요도 없 습니다. 다르고 틀렸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은, 그냥 내 기준에서 그럴 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 가라지라고 생각되는 불편한 사람들과 고통스런 사건들은 여전히 계속해서 발 견되는데요, 애초에 그들을 더 근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라지가 식물에서는 비어있는 쭉정이이지만 사람에게서는 부족한 것들로 인한 결여됨의 결과들로 드러나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모자 란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랑은 당연히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심겨지게 된 안타까움을 내 일처럼 공감해주는 사랑으로, 때로는 언제 뽑혀 나 갈지 모를 불안함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랑으로, 때로는 어떤 처지이든 늘 기억하고 있다는 따뜻한 위로의 사랑 으로 그 모든 결핍들을 메꾸어나가면 됩니다.
사실 종들이 밭에 가서 그렇게 보고 주인에게 와 그렇게 말했던 것이지, 처음부터 주인의 눈에 가라지는 없었고 전부 다 알곡인 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이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온전한 존재들이며, 또한 그것을 완전하게 아는 것이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충만히 살아내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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