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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314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3. 3. 14. 08:07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30314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sTmpFQcZi5o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개인주의가 삶의 기준이 된 세상은 교회마저도 이 변화에 함께 하기를 요구하곤 합니다. 이 말은 신자들 역시 개인주의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질문은 그 무게가 용서가 중요했던 그 때와 달리 더욱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저에게 죄를 지으면

 

세상에는 많은 죄들이 있고, 우리는 죄에 대한 용서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랑의 가르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가 사회적 죄라든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이라면 용서는 너그러움이 되기도 하고 많은 동의를 구하는 가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문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됩니다. 여기에는 그 죄를 지은 이가 내 형제라는 사실이 더 큰 문제가 되고, 또 직접적으로 피해를 내가 받았으므로 보상이나 사죄 없이 용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가치가 됩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예수님의 이 후한 말씀은 모든 생각의 기준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말씀은 여전히 기준이지만 그럼에도 그 굳건함이 각 사람들에게 여전할까 하는 문제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은 죄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지니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주님의 단호함을 볼 기회가 좀처럼 없습니다. 주님은 그보다 용서의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긴 오해는 죄를 지어도 괜찮다혹은 누구나 죄를 짓는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용서에 대해서는 그처럼 단호하고 호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주님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보입니다. 용서는 권리가 아니라 죄인에게도 하느님의 자녀에게도 필요한 가치인데 말입니다.

 

하느님이 언제고 우리의 잘못을 허락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선택하고 뒤틀어져 버린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언제나 사람의 잘못, 그것도 당신의 거룩하심과 완전하심에 상처를 입힌 그 잘못에 용서를 하셨습니다. 알면서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용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도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근본을 잊은 태도입니다. 세상이 변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꼭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0:00 오늘의 복음

2:33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