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죄에 맞서 싸우기|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3. 2. 6. 00:25

죄에 맞서 싸우기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성경은 우리에게 얌전하라고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싸우라'고 합니다. 우리는 '싸운다'는 단어만 생각하면 부정적인 영역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무턱대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싸운다는 말을 겨루어 이겨낸다는 단어로 바꾸면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가는 구원의 여정은 여러가지 면에서 이겨내야 하는 여정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서 이미 체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살아 남으려면 여러가지 도전들을 직면해야 하고 그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아무도 거저 입에 밥을 넣어주지 않습니다. 형제가 여럿인 집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형제 간에도 겨루어야 했습니다.

 

 

 

신앙도 그저 숟가락 물고 앉아 있으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도 수동적으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힘을 내어서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헌데 신앙의 싸움은 세상의 여느 싸움과는 남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 싸움이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싸움의 대상에 '죄'와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이라는 면에서 이 싸움은 흔히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싸움을 전제로 합니다. 즉, 외적으로 실력을 겨루는 일이 아니라 내면의 선과 성실성, 믿음과 희망을 꾸준히 키워 나가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쉽게 무시해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눈에 보이는 돈을 겨루는 일이면 적어도 목표가 뚜렷해 보이는데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그 목표점이 하느님이라는 분으로 흔히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편하게 '없다'라고 생각해 버리고 맙니다. 여기에서부터 지는 사람이 생겨나게 됩니다. 싸움을 숫제 시작도 하지 않은 채로 패배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꾸준한 의지적 선택을 전제로 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라면 손에 쥐면 잡히는 그것을 위해서 열성을 내겠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을 욕구하고 원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싸움이 됩니다.

 

 

 

죄와 악과의 싸움이라는 면에서 이 싸움은 어마어마한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그저 우리를 기다려주는 얌전한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공략하고 넘어뜨리고 파괴하고 멸망시키려고 안달이 나 있는 대상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우리에게 다가와 유혹을 걸고 우리가 정의로움을 실행하는데도 우리가 나쁜 사람이라고 괴롭힐 것입니다. 그것이 악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악의 특성은 진정한 선이 어디에 있는가를 절대로 찾아보지 않습니다. 악은 그저 자신의 이득만을 꾀해서 그것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서로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를 파괴하고 맙니다. 서로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와 악의 싸움에서 우리는 올바른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무기 가운데 최고봉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무력해 보이고 나약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악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이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악에 악으로 맞섭니다. 그러면 결국 그 악이 스스로를 잠식해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