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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우리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유/ 대림 제2주간 화요일/ 2022 12 06

松竹/김철이 2022. 12. 6. 07:55

우리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유/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 2022 12 06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aS78fO9hOsI

 

 

 

2022년 가해 대림 제2주간 화요일 – 우리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지 못하는 이유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입니다. 루카 복음에서 양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버려둔 채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는 것과는 달리 마태오 복음은 매우 교회적이고 사목적입니다. 일단 양들은 ‘산’에 둡니다. 산은 기도하는 장소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양들이 스스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때가 되면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때를 잘 모르고 산에 있는 양들에게 집중하면 오히려 양들을 잃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저도 본당에 와서 일단 양의 우리를 손보고 양들이 빠져나가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첫 번째로 보았습니다. 일단 그물코가 단단히 이어져 있어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손보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으로 말하면 저희 본당을 산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스템. 이것은 공동체에 들게 만들어 그 공동체의 친교가 신자들을 잡아놓고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실에 힘을 쏟아야 할까요? 언제 잃은 양을 찾으러 나가야 할까요? 이것이 고민입니다. 만약 너무 이른 타이밍에 양들을 찾아 나서면 지금 있는 양들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너무 늦은 타이밍까지 내실만 기하려다 보면 쓸데없는 간섭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 타이밍을 아는 것이 지혜인 것 같습니다.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엄마가 아이를 믿지 못하여 cctv로 감시까지 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간섭에 ‘새’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엄마에게 자신은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깁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데 간섭하니 잘한 것도 엄마의 공로가 됩니다. 엄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합니다. 아이는 엄마의 간섭에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엄마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녀에게 시선을 돌려서 자녀를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간섭하는 만큼 아이의 자존감은 추락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정은표 씨 가족은 아이들을 방임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훨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합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일곱 살까지만 키워주는 것이라 하셨을 때부터 그래도 나의 인생에 책임을 지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가고 크게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성당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이란 사제의 간섭 없이도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신자들일 것입니다. 만약 대부분이 단체에 가입해서 그 안에서 성장하고 기도하며 봉헌 생활과 성체를 영하는 정도가 된다면 그때는 시선을 밖으로 돌려야 할 때일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한 단체에 가입하고 감사일기를 쓰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신자 대부분이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을 때 저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갈 것입니다.

 

사제가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 신자들의 자존감은 배가합니다. 자신을 믿어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고 자신들이 잃어버린 양처럼 사제가 목숨을 바칠 정도로 귀중한 존재임을 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우리 안에서 스스로 성장합니다. 이때를 알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어느 때부터는 무관심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무관심할 때도 자녀들은 자라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곳이 양 떼를 풀어놓는 산입니다. 그 산에는 데려다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양들이 산에 있어도 내가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산에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산에서 스스로 성장해본 적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음을 압니다. 목자는 그래서 언제 양들을 산에 놓아주어야 하는지 압니다.
정은표 씨 부부는 스스로 성장할 줄 알았던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만 해주면 자녀들이 스스로 성장하는지 압니다. 저는 하.사.시.와 성체조배였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진리를 찾으려 하고 은총을 찾으려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오게 만드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의인은 목자가 없어도 스스로 산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입니다. 그러한 공동체에 속할 줄 아는 자이고, 은총과 진리로 목자가 없어도 스스로 성장할 능력을 지닌 자입니다. 그런 공동체가 형성되면 이제 목자는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때 양들을 신경 쓴다면 양들은 더 피폐해집니다.
신애라 씨는 딸 둘을 입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도 그것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차인표, 신애라 씨 부부가 이 정도면 아이들이 자기들 스스로 클 수 있음을 알았기에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은 친자녀들이 너무나 잘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입양한 딸들이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하자 수많은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주기로 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녀를 잘 키우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할수록 친자녀들은 부모가 믿어줌을 알아 더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목자의 도움 없어도 잘 자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목자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언제까지 함께 있어 주어야 하는 줄 알고, 그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줄 알며, 또 언제 그들을 떠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가야 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