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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신앙이 쉽게 무너지는 사람의 특징/ 대림 제1주간 목요일/ 2022 12 01

松竹/김철이 2022. 12. 1. 00:00

신앙이 쉽게 무너지는 사람의 특징/ 대림 제1주간 목요일/ 2022 12 01/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pKo3LjnywDI

 

 

 

2022년 가해 대림 제1주간 목요일 – 신앙이 쉽게 무너지는 사람의 특징

 

오늘 복음은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모래 위의 집처럼 무너진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이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신자가 냉담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냉담한 이들은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뜻, 곧 사랑의 실천에 목적을 둔 신앙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더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목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해서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고생하며 자란 집들은 다 천주교 신자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형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용했고 그래서 어머니는 한 집은 탈출해야 했으며 한 집은 집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한 불쌍한 길 잃은 아이를 그렇게 이용하고 차별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어머니가 가족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길에 쓰러진 강도 만난 사람이 형제로 보였다면 사제나 레위인이나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오직 사마리아인만 이 그를 형제로 보아주었습니다. 형제로 보이지 않으면, 가족으로 보이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휴가 때 놀러 가다 체험했습니다. 저도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는 해 주었지만, 그분과 함께 있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그 사고 당한 사람이 가족으로 보였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강론을 수백 번 해도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지를 않습니다. 가족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상한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한 재벌가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충성하던 주인공이 그들에게 배신당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죽게 된 주인공은 죽는 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재벌 집 넷째 아들 손자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래 일을 알기에 많은 돈을 벌고 재벌에 복수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요?
주인공은 I.M.F. 때 아버지가 정리해고되어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사망하게 된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상관도 없는 옛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갑니다. 가족들은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압니다. 이전 생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였음을. 그는 가진 재산 전부를 내어놓으며 망해가는 아버지 회사를 매입하려 합니다. 이것이 복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기억만으로 지금은 남의 식구가 되어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주인공의 선택은 우리 모두의 공감을 얻습니다. 누구나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의 부모였다는 기억이 이렇게 소중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든 사람이 가족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겠습니까? 이 드라마처럼 ‘기적’을 통해서입니다. 그 기적은 미사 때 ‘성체성사’로 일어납니다. 성체성사를 믿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를 둔 한 형제들이 됩니다. 말로만 형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진짜 형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창조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또한 나의 형제들이 됩니다. 그분한테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성체성사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십계명이 지켜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했다면 성체가 아니면 이는 불가능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냉담을 한다면 이는 그동안 신앙생활의 목적이 사랑의 실천이 있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다 자칫 사랑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빠질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정치적으로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성직자도 있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 우리 신앙의 목적이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런 신앙의 길로 빠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을 사랑 실천이라는 암석 위에 세웁시다. 그러면 우리가 짓는 신앙의 집이 결코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