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팔도강산 (1967)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CwqksNMDPic
노래이야기
요즘에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노래 잘하는 신인가수들이 발굴되는 경우가 많지만, 1950년대 중반. 노래에 재능있는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곳은 바로 미8군 쇼무대였습니다. 1955년, 6.25전쟁으로 일본에 주둔하던 미8군 사령부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그때부터 미군장병을 위문하는 쇼무대가 활성화됐는데요. 당시 미국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밥 호프’가 이끄는 위문단이 구성돼서 매년 ‘마릴린 먼로’와 같은 육체파 여배우들을 이끌고 내한해서 미군장병을 위한 공연을 가졌고요. 이때 우리나라를 찾은 팝가수 중엔 ‘자니 마티스’ ‘냇킹콜’ ’팻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연예인으로 구성된 미8군쇼 단체가 발족하면서 미군클럽이 264개나 될 정도로 성업을 이뤘는데요. 이렇게 수많은 미8군 무대를 통해서 멋진 노래를 선보이며 가수로 첫발을 내디딘 선배님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최희준 선배님도 있었지요.
경복고 시절부터 AFKN을 들으면서 최신팝송을 거의 외다시피할 정도로 음악광이었던 최희준 선배님은 서울대 법학과 재학시절, 친구의 권유로 1959년 제1회 서울대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서 팻분의 ’I'll Be Home‘과 이브 몽땅의 ’고엽‘을 불러서 1등을 했는데요. 이 소문을 듣고, 계기로 미8군 무대에서 잘 나가던 파피 악단에서 찾아와 악단에 합류해주기를 권유하기에 이르지요. 마침 이 당시 사법시험에 고배를 마셨던 최희준 선배님은 끈질긴 권유에 못이겨 미8군무대에 서게 되는데요. 그 당시 한명숙 선배님, 현미 선배님, 패티김 선배님 등과 함께 아르바이트로 음악활동을 시작했고요. 이때 미8군 무대에서는 주로 팝송이나 번안곡을 많이 불렀는데, 최희준 선배님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색에 반한 사람들은 ’한국의 냇킹콜‘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노래했던 최희준 선배님이었는데요. 이런 최희준 선배님의 운명을 바꾸놓은 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작곡가 손석우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당시 KBS경음악단장이던 손석우 선생님은 미8군쇼의 최고스타였던 최희준 선배님에게 자신이 만든 노래 ’그림자‘와 ’목동의 노래‘를 취입하도록 제안했는데요. 처음 최희준 선배님은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음악적인 실력과 능력이 모자라서 자신이 없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주위사람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번안곡이 아닌, 자신만의 노래를 녹음했고요. 손석우 선생님은 ‘항상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본명인 ‘최성준’ 대신 ‘최희준’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지요. 그리고, 이후 손석우 선생님과 최희준 선배님은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하숙생’ 등의 명곡을 탄생시키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희준 선배님은 우리 가요사에서 드라마와 영화주제가를 가장 많이 히트시킨 가수로 유명한데요. 1960년대 본격적으로 TV시대가 열리고,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상대적으로 극장쇼 중심이었던 가수들의 활동은 TV나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 주제가 중심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때는 잘나가는 가수가 되려면 드라마나 영화 주제가를 불러야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요. 그 소문을 사실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최희준 선배님이었습니다.
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이 영화와 주제가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시각장애인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드라마 ‘진고개 신사’, 60년대 생활상을 담은 서민 드라마 ‘월급봉투’, 사형수의 이야기를 그린 ‘뜨거운 침묵’,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을 그린 ‘가슴을 펴라’에 이어서 1966년에 발표된 드라마 주제가 ‘하숙생’, ‘엄처시하’, 영화 주제가 ‘종점’에 이르기까지 최희준 선배님의 히트곡 행진은 거침이 없었고요. 언젠가부터는 ‘최희준이 불러야 노래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도 함께 히트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67년 또하나의 영화 주제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는데요. 영화 ‘팔도강산’과 동명의 제목인 ‘팔도강산’입니다. ‘팔도강산’은 1967년 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한 국책홍보 계몽영화인데요. 배석인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서울 국도극장에서만 33만 명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 ‘성춘향’(1961년)에 이어 60년대 통틀어 세 번째 흥행작으로 많은 관객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배우 김희갑 선생님은 한의원을 경영하는 딸 부잣집 아버지로 등장해서 배우 황정순 선생님과 함께 실제 부부로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는데요. 영화 줄거리를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1남 6녀를 둔 한 노부부가 팔도강산 곳곳에 사는 아들딸들의 초대를 받고 유람여행을 떠나는데, 가는 곳마다 몰라보게 달라진 근대화의 모습에 흐뭇해하고, 아들딸들 역시 모두 하나같이 건실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간는 계몽적인 내용이었고요. 영화의 성공과 함께 영화주제가 또한 크게 사랑받았습니다.
“팔도강산 좋을시고 딸을 찾아 백 리 길
팔도강산 얼싸안고 아들 찾아 천 리 길
에헤야 데헤야 우리 강산 얼씨구
에헤야 데헤야 우리 살림 절씨구
잘 살고 못 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
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
줄줄이 팔도강산 좋구나 좋다.
팔도강산 좋을시고 살판이 났네
팔도강산 얼싸안고 웃음꽃을 피우네
에헤야 데헤야 우리 강산 얼씨구
에헤야 데헤야 우리 살림 절씨구
잘 살고 못 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
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
줄줄이 팔도강산 좋구나 좋다. ”
방송작가 ‘신봉승’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작곡가 이봉조 선생님이 곡을 붙인 ‘팔도강산’은 부드러우면서도 넉넉하고 구수한 창법으로 노래한 최희준 선배님의 목소리를 따라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고요. 이후 ‘속 팔도강산’, ‘내일의 팔도강산’ ‘우리의 팔도강산’ ‘아름다운 팔도강산’ 등 영화 시리즈가 속속 제작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시리즈 내내 노부부로 등장하는 김희갑, 황정순 선생님을 비롯해서, 고은아, 김승호, 김지미, 김진규, 김혜정, 김희라, 도금봉, 문정숙, 박노식, 사미자, 신성일, 신영균, 오수미, 유지인, 윤일봉, 윤정희, 이민자, 장동휘, 최무룡, 최은희, 허장강, 현석, 홍세미씨 등 인기배우들이 총출동했고요. 가수 김상희, 김시스터즈, 김추자, 박재란, 손인호, 은방울자매, 이미자, 이은관, 최희준, 한명숙, 현인 등의 인기가수들까지 대거 출연했는데요. 노래와 함께 전국 각지의 명승지와 산업현장을 두루 찾아다니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무료 순회상영을 개최하면서 야당으로부터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난과 함께 논란이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리즈마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팔도사나이’, ‘팔도식모’, ‘팔도며느리’, ‘팔도검객’, ‘팔도여군’, ‘팔도사위’ 등 팔도 시리즈 영화의 원조 격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최희준 선배님은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낯설었던 재즈를 대중화시키는데도 앞장섰고, 1988년에는 올바른 블루스 보급을 위해 한참 후배인 신촌블루스의 앨범작업에 참여해서 ‘하숙생’을 블루스풍으로 부르기도 했고, 2002년에는 록밴드 ‘사랑과 평화’와 협연을 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적 철학을 후배들에게 전해주었는데요. 좋은 목소리로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따뜻한 가슴으로 노래했던 최희준 선배님이었기에, 언제 들어도 선배님의 노래에는 진한 페이소스와 감동이 묻어나는 거겠지요?
꽃피고 신록이 아름다운 요즘인데요. 봄날의 미풍처럼 부드럽고 푸근한 노래 ‘팔도강산’을 듣다보면, 이 계절, 부모님 모시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팔도강산을 평화롭게 유람하는 행복한 상상에 자꾸만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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