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보고싶은 얼굴 (1963)

松竹/김철이 2022. 2. 26. 19:48

주현미 - 보고싶은 얼굴 (1963)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qRVcwexos7w

 

 

 

 

 

노래 이야기

 

1960년대.

재즈풍의 목소리로 한국 팝 장르를 선도했던 현미선배님은 그 당시 이미자 선배님, 패티김 선배님과 함께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여자가수였습니다. 세 분의 선배님이 음악적 색깔과 매력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누가 더 최고의 가수라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풍부한 성량과 보컬 능력으로만 따지면 현미 선배님을 더 높게 평가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천생 가수라고 생각되는 현미 선배님이 가수가 된 계기는 정말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본명이 김명선이었던 현미 선배님은 평양에서 태어나서 1.4후퇴 때

가족들과 함께 월남을 하게 되었고요.

8남매 중에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선배님은

8군 무대에서 무용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가수가 스케줄을 펑크내고 나타나지 않았고

현미 선배님은 급하게 그 가수 대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는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게 되면서 가수로서의 재능을 확인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 당시로는 귀했던 여대생 가수라는 장점을 살려서

현 시스터즈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는데요. 이때, 현미 선배님을 눈여겨봤던 작곡가가 있었으니, 그 분이 바로 이봉조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봉조 선생님은 한양공대 건축공학과 시절부터 미8군 무대에서 취미로

재즈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공연을 펼쳤는데요. 그곳에서 현미 선배님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아 목동아라는 팝송번안곡을 건네면서 음반으로 만들어줬죠. 이 곡을 녹음할 때, 현미 선배님의 성량이 너무 커서 다른 가수들과 다르게 마이크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서 녹음했다는 일화는

굉장히 유명한데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현미 선배님과 이봉조 선생님은 1962, 함께 첫 앨범을 작업하게 되는데, 그 데뷔곡이 지금도 유명한 밤안개입니다. 미국의 대가수 냇 킹 콜‘It’s a lonesome old town’을 이봉조 선생님이 편곡하고, 현미 선배님이 직접 작사한 가사를 입혀 발표한 밤안개는 전국적으로 큰 히트를 기록했고요. 이 곡으로 현미 선배님은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면서 1962년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한명숙 선배님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었죠.

 

 

 

현미 선배님은 미8군 무대부터 데뷔 초까지 재즈팝을 노래했지만, 이봉조 선생님과 만나면서부터는 주로 이봉조 선생님의 곡을 노래했는데요.

이봉조 선생님이 영화음악의 주제가들을 많이 작곡하면서 자연스럽게 현미 선배님도 여러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는데, 그 노래들은 영화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며 명곡으로 사랑받게 됩니다. 그 시작을 알린 노래가 바로 1963년에 발표된 보고 싶은 얼굴인데요.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보고 싶은 얼굴은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동시에 두 영화의 주제가로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보고 싶은 얼굴이 주제가였던 첫 번째 영화는 1964328일 개봉한 김성복 감독님의 영화 "보고 싶은 얼굴"인데요. 신성일, 엄앵란, 허장강씨가 주연을 맡았던 멜러드라마로 이봉조 선생님이 영화음악을 맡았고요.

두 번째 영화는 같은 해인 1964613. 을지극장에서 개봉했던 반공영화 나는 속았다입니다. 신영균, 문정숙, 이예춘, 임해림, 빅노식, 조미령, 태현실 등등...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여간첩 김수임의 사건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이 영화음악 역시 이봉조 선생님이 담당하면서 현미 선배님의 보고 싶은 얼굴을 주제가로 사용했죠.

 

같은 해에 개봉한 두 영화에 똑같은 주제가가 등장한 케이스는 아마 전무후무한 기록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 결과, 사람들은 영화보다도 주제가를 더 사랑하고 기억하게 됐고요. 애절한 멜로디와 가사로 인해 보고싶은 얼굴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그리고 그 당시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고싶어도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수많은 이산가족들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거리엔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현암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이봉조 선생님이 작곡한 보고 싶은 얼굴

전국적으로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현미 선배님의 대표곡이 되었고요. KBS1983년 생방송으로 진행했던 이산가족 찾기특별 프로그램에서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는 감동적인 순간에 보고 싶은 얼굴이 잔잔하게 흐르면서

전 국민의 마음을 울렸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하루 세월이 지날수록,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하나둘씩 쌓여가지요.

손 뻗으면 잡힐 것 같지만, 너무 멀리 달아나버린 추억들.

한 달음에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너무 멀리 떠나온 고향과 지나온 시절들.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이제는 꿈에서조차 가끔씩만 나타나는

보고싶은 얼굴들을 노래 속에서 잠시나마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