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소주 뱃사공(1942)

松竹/김철이 2022. 2. 2. 15:18

주현미 - 소주 뱃사공(1942)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sDox0U72Y8

 

 

 

 

 

노래 이야기

 

혹시 가수 이해연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낯설어하실 것 같은데요. 그럼 혹시 이런 질문을 드리면 어떨까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이 질문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분들이 노래 가사까지 기억하실텐데요. 가수 이해연선배님은

바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렀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입니다.

 

지금은 나지막한 언덕 정도로만 보이는 미아리고개지만, 6.25 전쟁이 발발한 다음에는 맨몸으로도 넘기 힘든 가파른 고개였고요. 그 고개를 맨발로

절며 절며 넘어가면서 가족이 있는 서울시내를 뒤돌아보며 눈물 흘렸던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삼천만 민족의 아픈 마음을 창자가 찢어지는 심정으로 노래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텐데요. 그 노래는 바로 가수 이해연선배님이 20대 후반인 1955년에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노래의 인기에 비해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가 없는 이해연 선배님인데요. 1924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고, 17살 때인 1941

콜럼비아 레코드사를 통해 전속가수가 됐다고 전해집니다. 첫 데뷔곡은

일본인 작곡가의 엔카곡에 조명암 선생님이 가사를 붙인 번안가요

백련홍련이었는데요. 이후, 작곡가 손목인 선생님이 이해연 선배님의

청아한 목소리가 좋아서 자신이 작곡한 노래 두 곡을 주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1942년에 발표된 뗏목 이천리소주 뱃사공입니다.

그리고, 이 두 노래가 크게 히트하면서 가수 이해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었죠.

 

초창기 이해연 선배님은 민요풍의 소리로 노래했지만, 해방 이후

단장의 미아리 고개압록강 칠백리같은 노래들은 정통 트로트 창법으로 불렀고요. 이후 박춘석 선생님의 노래 세월은 간다등의 노래를 부를 때에는 블루스풍이 가미되면서 시대에 따라 새로운 창법을 선보였습니다.

그만큼 대중가요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늘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는 천상 가수였는데요. 1960년대 초까지 앨범을 취입하면서

활동하다가 1974, 온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돌연 이민을 떠났고요.

그러다 1984년에 손인호선배님과 함께 히트곡집을 발매해서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이해연 선배님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가족으로도 유명한데요.

이해연 선배님의 여동생은 1955황혼의 엘레지를 부른 백일희선배님이고, 남편인 베니 김은 치과의사 출신으로 1950년대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했던 유명 트럼펫 연주자였구요. 슬하에 32녀를 뒀는데, 그들 중

김파(기타김담(드럼김선(건반) 삼남매가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해서

연안부두라는 최고의 히트곡을 발표하기도 했죠. 이렇듯 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이해연 선배님의 노래 중에서 오늘은 민요가수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 발표한 노래. ‘소주 뱃사공을 준비했는데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라고 묻는다면, 예로부터 이런 말이 전해옵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중국의 소주는 양자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잡은 곳으로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물의 도시인데요.

작사가 조명암선생님이 다른 곳도 아닌 소주를 배경으로 노랫말을

지은 데에는 아마도 중국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을 했던 동갑내기 삼촌을 그리워했기 때문일 겁니다.

 

늦게 막내아들을 본 할아버지와 일찍 장가를 든 아버지 덕분에 조명암

선생님은 자신과 동갑인 막내삼촌과 함께 자라났는데요. 누구보다 친했던 삼촌은 동경유학을 조카인 조명암 선생님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중국땅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메모 한 장만 남겨놓고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삼촌이 독립투사로 활동하면서 할아버지는 아들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셨는데요. 그러던 어느날,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조명암 선생님은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삼촌이 보낸 편지 한 장을 받게 됩니다. 동상에 걸렸으니, 가능하다면 약을 구해 인편에 보내달라는 부탁이 적힌 쪽지였고, 그 편지를 본 순간 조명암 선생님은 이 추운 겨울,

동상에 걸리면서도 광복군에 들어가 항일운동을 하고 있는 삼촌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고요. 그 마음을 담아 작사한 노래가

바로 고향설입니다. 그리고, ‘소주 뱃사공역시 머나먼 중국 땅에서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을 삼촌의 심정을 담아

가사에 적은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됩니다.

 

 

복숭아꽃이 피는 삼사월 소주땅

물새가 울어 울어 해질 무렵에

저 멀리 돌아온다 흰 돛대 붉은 돛대

행복에 꿈을 싣고 꿈을 싣고 손짓을 한다

 

꽃잎이 부서지는 바다의 뱃머리

바람아 불지 마라 봄날이 간다

저 멀리 떠나가는 소주 땅 뱃사공은

唐明주 가득 싣고 가득 싣고 어디로 가나

 

한산사 종소리에 해지고 달이 떠

흐르는 물결마다 흐르는 달빛

뱃사공 아저씨에 보내는 편지에는

그리운 나가사끼 나가사끼 항구의 소식

 

 

소주 뱃사공1942년 발표될 때, 조명암 선생님의 또다른 이름이었던

이가실작사, ‘손목인작곡으로 취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조명암 선생님이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1965년에 금지곡이 되었고요.

반야월 선생님이 이 노래를 일부분만 개사해서 제주 뱃사공이라는

제목으로 재취입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소주 뱃사공을 반야월 작사의

제주 뱃사공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은 게 사실인데요.

세월이 흘러, 금지곡들이 해금이 되면서 원곡을 그대로 다시 부르고

만날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