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아메리카 차이나타운(1954)

松竹/김철이 2021. 11. 24. 21:40

주현미 - 아메리카 차이나타운(1954)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Vju0akzlgGs

 

 

 

 

노래 이야기

 

요즘 K POP이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한류의 붐을 이끌고 있는데요.

1960년대에도 동남아시아에서 우리 가요의 인기가

대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1963년 영화주제가였던 빨간마후라가 동남아에서 인기를 얻게 되면서 노란 샤쓰의 사나이’ ‘대전 블루스도 동남아로 진출해서 큰 사랑을 받았고요. 그 시절, 역시 아시아팬들에게 사랑받았던 노래가 있었으니, 그 곡은 바로 백설희 선배님이 노래했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입니다. 1954년에 발표됐던 노래지만, 워낙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겼던 노래였기에 뒤늦게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면서 원조 한류가요의 붐을 일으킨 거죠.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설희 선생님은 1943년 조선 악극단이 운영하던 음악무용연구소에 들어가면서 악극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 뮤지컬의 대부로 평가되는 김해송 선생님이 지휘했던 KPK악단의 뮤지컬 '카르멘 환상곡'의 주인공 카르멘역을 맡으면서 악극스타로 각광 받았는데요. 이때 익힌 플라멩고 춤을 백설희 선배님은 가수가 된 이후에도 무대에서 종종 보여줬는데, 50년대에 공중파에서 캐스터네츠를 연주하면서 플라멩고를 추었던 기성가수는 아마도 백설희 선배님이 유일할 겁니다.

 

본명이 김희숙이었지만, ‘백설희라는 예명을 만난 것도 바로 이때인데요. KPK 단장이던 유명 작곡가 김해송 선생님은 에베레스트의 눈이 밤낮 없이, 여름 겨울 없이 녹지 않고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듯 연예인으로서 높은 곳에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빛나라"는 뜻을 담아 백설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죠. 이후 6·25 전쟁 직전 새별악극단에 들어간 백설희 선배님은 배우 황해선생님을 만나서 결혼하고, 평생을 함께합니다.

 

춤과 연기, 노래까지. 훌륭한 재능을 가진 연예인이었던 백설희 선배님이었기에 정비석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자유부인' 직접 출연해서 아베크 토요일을 부르기도 했고요. 박시춘 선생님이 제작한 영화 딸 칠형제에는 남편인 배우 황해 선생님과 동반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작곡가 박시춘 선생님과 백설희 선배님의 인연은 1953년에 시작됐습니다.

악극단에서 연기와 노래를 선보이며 활동하던 백설희선배님을 50년대를 구가하는 최고의 여자가수로 만든 노래. 바로 봄날은 간다를 작곡해서 건네준 사람이 바로 박시춘 선생님이었거든요. '카르멘 야곡', '물새 우는 강 언덕', '청포도 피는 밤', '코리아 룸바' 등 수많은 히트곡이 두 분의 조화 속에 탄생했죠.

 

오늘 소개해드릴 노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역시 박시춘 선생님의

곡입니다. 1950년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나라와 풍물을 직,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과도기였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외국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고, 이런 심리를 저격해서 이국적인 정취를 담아낸 대중가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등장한 노래가 바로 봄날은 간다의 작사가였던 손로원 선생님과 작곡가였던 박시춘 선생님이 만든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입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손로원 선생님은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에 주옥같은 노랫말을 남기신 분이죠. ’봄날은 간다‘ ’울고넘는 박달재‘ ’경상도 아가씨‘ ’비 내리는 호남선등 무려 3000곡이 넘는 노래들을 작사한 분이지만, 아쉽게도 그분의 개인적인 기록은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1930년대에 시인과 작사가로 활동하다가 치욕적인 일제 강점기 상황에 절필을 선언하고, 술과 벗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초상화가로 활동하며 방랑생활을 하다가 해방된 이후 다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부산의 판잣집 단칸방에서 생활하면서 가사를 쓰던 어느날, 1953, 부산역 대화재가 일어나고 손로원 선생님의 판자집에도 불이 나면서 고이 간직해왔던 사진, 바로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찍었던 어머니의 사진이 불타버렸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참담한 마음을 담아 불효의 회한을 매만지면서 써내려간 노래가사가 불멸의 가요 봄날은 간다였다고 하죠.

 

그 당시 손로원 선생님은 부산의 단칸방에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특별한

노랫말들을 연이어 작사했는데요. 이때 나온 노래들이 현인 선배님의

인도의 향불‘, 장세정 선배님의 샌프란시스코허민 선배님의 페르시아 왕자‘, 금사향 선배님의 홍콩 아가씨‘,

그리고 백설희 선배님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입니다.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 거리

란탄 등불 밤은 깊어 바람에 깜박깜박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검푸른 실 눈썹에 고향 꿈이 그리워

태평양 바라 보면 꽃 구름도 바람에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아 애달픈 차이나 거리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 거리

귀거리에 정은 깊어 노래에 깜박깜박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라이 라이 호궁이 운다

목단 꽃 옷소매에 고향 꿈이 그리워

저 하늘 빌딩 위에 초생달도 노래해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깜박

아 애달픈 차이나 거리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은 미국의 차이나 타운 거리를 흥겹게 묘사한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은 미국의 차이나타운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곡이죠. 경쾌한 듯한 멜로디임에도 불구하고, 우수 어린 정서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백설희 선배님의 목소리 때문일 겁니다. 백설희 선배님의 낭낭한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배어 있어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는데요. 청아한 목소리에 일렁거리는 한을 담아 노래했던 백설희 선배님의 노래들은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많은 후배가수들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되어 애창곡으로 불려지고 있죠.

 

백설희 선배님의 아들인 가수 전영록씨는 어머니에 대해서 이런 회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공연이나 방송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도 화장을 지우는 법이 없었던 어머니는 가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셨습니다. 늘 단아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셨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깨끗한 모습으로 보내 달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볕 좋은 봄날처럼 살고자 하셨습니다

 

한 평생 봄날같은 노래를 부르다 어느 봄날 우리 곁을 떠나간 백설희 선배님의 봄바람같은 노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을 감상하시면서 요즘처럼 시린 계절. 여러분 마음에 따뜻한 그리움의 바람이 불어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