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길

주현미 - 맨발의 청춘 (1963)

松竹/김철이 2021. 9. 1. 16:10

주현미 - 맨발의 청춘 (1963)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exr6uLoDamY

 

 

 

 

 

노래 이야기

 

우리 가요사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접어들 무렵엔

서구 음악장르가 도입되면서 밝고 도회적인 분위기의 노래들이 사랑받았습니다.

작곡가 손석우선생님을 중심으로

한명숙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처럼

밝은 색감의 스탠더드 팝이 가요계의 흐름을 주도하던 그 시절.

1960년대 초의 건전하고 명랑한 대중가요의 흐름을 깬 문제적 노래가 등장하는데요.

그 노래는 바로 최희준 선배님의 "맨발의 청춘" 입니다.

 

과도하게 명랑한 노래들 일색이었던 1960년대 가요계의 흐름과 달리

2/2박자 세 도막으로 이루어진 단조의 형식으로

헐리우드 갱 영화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재즈 분위기의 노래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구요.

최희준 선배님 역시 이 노래를 통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죠.

 

이전까지만 해도, 최희준 선배님이라고 하면?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가수!

"내 사랑 쥬리안"이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 밝고 깨끗한 이미지의 가창력을 가진 가수로 사랑받았는데요.

이봉조 선생님을 만나서 "맨발의 청춘'이라는 곡을 통해

재즈적인 어두운 분위기와 남성적 에너지를 절제감있는 가창력으로 노래하면서

최희준이라는 가수의 폭넓은 스펙트럼과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시작으로 "나는 곰이다" "폭풍의 사나이"처럼 "맨발의 청춘"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계속 부르면서, 그만의 세련되고 중후한 남성적 분위기를 구축하게

되구요.

이봉조 선생님과 컴비를 이뤄서 "맨발로 뛰어라" "종점" "팔도강산" 등의 히트곡을

계속 발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죠.

 

이봉조 선생님과 최희준 선배님의 공통점은

두분 모두 미 8군에서 공연을 하면서, 미국식 팝을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식 7음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그 당시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블루스, 재즈, 스윙, 트위스트, 도돔바같은 리듬을

활용했구요.

특히, 이봉조 선생님은 재즈의 어둡고 향락적인 분위기를 가장 매혹적으로

잘 표현해낸 천재 작곡가였습니다.

 

진주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52년 한양공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이봉조 선생님은

대학 시절부터 미8군에서 취미 활동으로 재즈 색소폰을 연주하고 공연했구요.

대학졸업 후, 서울특별시청 토목과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미8군 무대에서

재즈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다가 공무원직에서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재즈음악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작곡가로서 각광받으면서 현미, 정훈희 선배님같은 가수들을 발탁했고,

"무인도" "꽃밭에서" "사랑의 종말"처럼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죠.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 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 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외롭고 슬프면 하늘만 바라보면서

맨발로 걸어왔네. 사나이 험한 길

상처뿐인 이 가슴에 나 홀로 달랬네

내버린 자식이라 비웃지 말라

내 생전 처음으로 바친 순정은

머나먼 천국에서 그대 옆에 피어나리

 

 

기존 노래들의 소극적인 신파적 정서와는 다르게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마라"라는 가사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을 억지로 돌파해가는

남성적인 분위기의 가사는 그 당시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구요.

 

이듬해인 1964, 김기덕 감독, 신성일 엄앵란 선배님이 주연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 "맨발의 청춘"이 개봉하고, 이 노래가 주제가로 삽입되는데요.

곱게 자란 외교관의 딸과 뒷골목 범죄단의 말단 조직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영화 "맨발의 청춘"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당시 주인공을 두수역을 맡았던 신성일선생님의 반항적인 눈빛은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리면서,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청춘의 상징이 됐구요.

다방과 댄스문화, 트위스트춤 등의 1960년대 도시 젊은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특히, 극중에 나오는 트위스트춤과 주인공 두수가 입었던 가죽점퍼와 청바지가

대유행했구요. 신성일·엄앵란 콤비뿐만 아니라, 가수 최희준선배님 역시 최고의 스타로

사랑받게 됐죠.

 

최희준이라는 이름은 작곡가 손석우선생님이 지어주신 예명이라고 하죠.

본명은 최성준이었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이름에 기쁠 희()’

넣어서 최희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 이름처럼 언제나 미소 지으시고 자상한 모습이 참 멋지고, 존경스러운

선배님이셨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의 희로애락을 부드러운 저음으로 감싸줬던

최희준 선배님.

이제는 무대에서 노래하시는 모습을 만날 수 없기에 더욱 더 그리운데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최희준 선배님의 명곡.

"맨발의 청춘"을 감상하시면서

이 가을, 오랜만에 예전의 영화와 추억을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