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개별의 군집|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1. 3. 24. 17:33

개별의 군집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과거에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사조라는 것이 있었지요. 철학의 사조, 사상의 사조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메인 흐름이 존재했고 그것은 추종자들에 의해서 다시 재검토되고 그 결과물로 인해서 힘이 더해져갔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메인 방송국이 있었고 메인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종교도 그 중의 하나였지요. 4대 종교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은 말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현실이 판판이 깨지고 있습니다. 메인의 흐름이 맥을 못추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서서히 시작되었고 코로나는 이 현상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지금은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군집을 형성합니다. 과거에는 주된 흐름이 관심사를 장악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만 수가 틀리면 개인들의 군집, 개별의 군집의 힘이 그것을 파괴해 버립니다.

 

이 흐름 안에서 크게 작용하는 것은 군중이 정의하는 선과 악입니다. 선이라도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이나 집행 양상이 악으로 비춰지면 그것은 군중에 의해 으로 정의되어 버립니다. 반대로 그것이 악이라도 겉포장이 좋아 보이면 그것은 선으로 분류됩니다. 자녀에게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부모는 꼰대로 포장되기 일쑤이고, 겉으로 동정을 유발하는 살인자가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여성들은 모여서 남성성을 두고 싸잡아 가부장적 폭력으로 바꾸어 버리고, 반대로 여성의 부드러움과 섬세함도 유약하고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버립니다.

 

이런 해체성 가운데 그리스도교가 존재합니다. 아직까지는 그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작은 파동 하나로 순식간에 군중의 반발이 이어질 것은 뻔합니다. 그리고 종교 전체가 으로 치부되어 버릴 것이 눈에 선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종교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가치를 말하고 변화 즉 회개를 꾀해야 하는데 종교인들의 삶이 100퍼센트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미흡함 하나로 전체가 매도되어 버릴 것은 지금까지의 흐름에 비하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종교가 사람들을 겁내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잦아들게 될 지 모릅니다.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못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면 결국 종교는 그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누구나 다 하는 이야기를 하는 종교, 그저 마음의 평안이나 찾아주는 힐링센터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우리 스스로를 다잡고 신앙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힘을 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군중이 정의하는 선과 악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외치는 세상의 목소리에 동의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고백해야 하는 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