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연중28주 수요일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0. 10. 14. 16:02

연중28주 수요일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클릭):www.youtube.com/watch?v=GTHnVDocyoM

오늘 복음은 겉과 속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에게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적인 모습이 있고 영혼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는 내적인 모습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적인 모습에 흔들립니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엄청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꾸준히 광고하고 그렇게 해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실제로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양복을 입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누군가를 믿고 돈을 맡겼다가 훗날 후회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겉보다는 속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를 들어 묵주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으며 그것을 얼마나 남들이 볼 수 있게 드러나게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사람들 앞에 내어놓기 위한 외적 행위일 뿐입니다. 한 사람이 기도를 얼마나 진실되이 했으며 간절하게 했느냐를 하느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건 그가 실제로 사는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기도에 빠져드는 이는 그것이 그의 향기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 향기는 1독서에 등장하는 내적 열매들입니다. 이런 가치들은 절대로 변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와 같은 것은 늘면 늘수록 좋은 가치입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자녀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풍기는 이 냄새를 이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다른 한 편, 외적인 형태 그 자체로 내면을 드러내는 일들도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1독서의 전반부에 나타나는 '육의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일들은 굳이 숨길 것도 없이 영혼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런 행동들은 그 자체로 영적 문제를 드러냅니다. 따라서 이런 행동은 뉘우치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 그것을 두둔하고 변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어쩔 수 없이 친구따라 점보러 갔다는 식입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성경 표현 그대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더 '복잡한 형태'를 가르칩니다. , 사람들에게는 외적으로 선한 척을 해서 좋은 평판을 얻고는 싶은데 속으로는 악에 기울어져 있는 이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런 이들을 성경은 '위선자'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처하면서 외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는 철두철미하게 지키지만 정작 지녀야 하는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무시하고, 내면의 교만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서 회당의 윗자리와 장터의 인사치레를 좋아하고, 속은 썩은 시체, 즉 온갖 악한 의도가 냄새를 풍기면서도 그 겉은 선한 척 새하얀 회칠을 해서 아름답게 꾸며놓는 식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맡기려는 이'가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히 무슨 일을 맡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직무는 분담되어 있고 저마다 해야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것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직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다른 이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율법 교사는 율법을 풀이해줘서 하느님의 뜻을 알게 도와주어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 가깝게 여기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반대의 일, 즉 율법을 더 어렵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가서는 길을 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서라도 집안을 올바로 다스려야 할 때에 그 역할을 엄마에게 맡겨 버리는 식이지요. 사제가 신자들의 영적 사정을 바로세우고 도와야 할 때에 정반대로 그들의 영혼을 흐트리는 경우를 말하고 신앙인이 비신앙인 앞에 삶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때에 역으로 그들 앞에 욕먹을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불행하다' 일컬어집니다. 세상에서 누릴 것이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눈 밖에 머무르기에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애초부터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눈길 앞에 살아간다면 불행을 피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 불행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진우 요셉 신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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