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의지 / 우리의 의지_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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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의지 / 우리의 의지
진짜로 원하는 것의 식별
우리가 피상적으로 원하는 것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행복'을 바라지만 그 행복의 구체적인 면에서 훈련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싫어할 것이 뻔합니다. 이는 마치 고등학생이 대학교에는 들어가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나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바람직한 원의인지 아닌지를 먼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술독에 빠져있거나 마약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인간의 정해진 면
우리는 나라를 선택할 수 없고 성별을 선택할 수 없으며 가족 구성원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지게 된 DNA 자체는 변화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한 요소들은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면, 우리가 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배움의 종류와 범위에 따라서 우리는 가능한 영역 안에서 완성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정도에서 완성되든 어디에서 멈춰서든 하느님은 우리를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완성의 방향은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올바로 식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정도까지 그것을 이룰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하느님이 근본적으로 바라시는 것
하느님은 우리를 고유한 구성원으로 저마다의 달란트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고 그것을 완성하도록 초대하시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 가운데 핵심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그 완성이라는 것은 '완벽'을 바라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올바로 알아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완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완전은 전능한 존재가 정한 대로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의 방향 대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관념의 문제
하느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성찰이 삶의 전반적인 방향을 정하고 최종 목적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나아갈 때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 보다 세밀하게 파고들어 일상의 모든 여유를 파괴하기 시작할 때에는 바로 우리 자신의 '결벽증' 또는 '세심증'에 대한 문제가 됩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서 비롯되는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판사가 아니라 인자한 아버지입니다. 판사는 세밀한 영역까지 파고들어 한치의 오류도 없이 정돈해야 만족하는 존재이고 인자한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미숙한 자녀의 노력을 보면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자유의 문제
우리의 '자유'는 내가 다 자유롭게 선택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쉽게 방종으로 빠지는 길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하느님의 근본적인 선과 사랑의 방향성 안에서 우리의 역량껏 이루는 데에 소요되는 자유입니다. 정해진 루트가 없는 차는 제멋대로 가다가 벼랑에도 떨어질 수 있고 중앙선을 넘어 다른 차와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가지고 적절한 규율을 지키면서 가는 차는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알 수 없는가?
신앙을 알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교회의 권위있는 가르침을 통해서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것일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에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때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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