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5분 신앙 특강|영적 식별의 필요에 대해서_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0. 8. 28. 00:36

5분 신앙 특강|영적 식별의 필요에 대해서_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Qq815r4rROk

 

 

 

세속의 힘이 바라보는 곳은 언제나 권력과 명예 그리고 가장 강력한 재화가 연계되어 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세상이 두 번 멸망하는 일이 있어도 세속의 힘은 이 관점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의 유일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안에 숨어 있는 권력과 명예, 그리고 재화의 움직임을 바라보면 사실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교회 안에도 현실적으로 비슷한 영역이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신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이 헷갈리는 부분이다. 교회는 그러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교회라는 영역 안에도 세속의 힘에 기대는 이들이 들어와서 자신들의 세력을 형성하고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 안에서 구축된 권력과 명예, 그리고 재화를 뒤쫓게 된다.

 

그러나 이 움직임이 세상의 움직임과 차원을 달리하는 이유는, 세상은 범죄가 아닌 다음에는 이 추구가 정상적인 일이고 그것을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가장 핵심적이고 원리적인 중심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와중에 저마다 추구하는 세속적인 욕구를 뒤따르는 자들이 '마치 아니 그러한 것'처럼 위선을 떨기 시작하기 때문에 혼란과 혼선이 가중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힘있는 자가 되는 것은 장려하는 것이고 권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대놓고 이런 추구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중심으로 한 가르침 속에서는 곧잘 비난받기 쉽기 때문에 아닌척 하면서 그러한 것을 뒤쫓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위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위선은 들키기 전까지는 ''으로 간주되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사실은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 훗날 다단계에 사람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성당에 일찍 와서 기도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그의 외적 행위를 보고는 그를 '열심한 사람'으로 분류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는 그런 사람들의 인식을 얻어서 결국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세속적 욕구를 충당하는 데에 쓰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의 내면이 획기적인 변화(이를 흔히 회개라고 부른다)를 통해서 변화되지 않는 이상은 겉으로는 아무리 거룩한 흉내를 내더라도 결국 그는 양의 탈을 쓴 게걸 든 이리에 불과한 것이다.

 

처음부터 하느님의 뜻을 추구해 왔고 비록 나약함 때문에 쓰러지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면에 선한 이들은 바로 이런 이들의 '위선'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설마'라는 추측을 달고 다니는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 하느님은 밀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두는 분이고 심판을 하지 않도록 조심을 시키신다. 그러나 그 말은 심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그들이 맺는 열매 자체를 분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내 앞에 있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면 필요에 의해서 피할 줄도 알아야 하고 나에게 능력이 있다면 씻어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식별'이 필요하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순한 이들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들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 진전에 '게으름'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내버려 두고 싶어하고 방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상이 거기에 그저 머물러 있으면 상관이 없지만 악은 하나의 '의지'이고 의지는 언제나 성장을 거듭하는 것이다. 무심코 내버려두었던 자녀의 무신앙이 훗날 세속적 탐욕과 무질서와 결합하여 부모의 생에 크나큰 재앙으로 발현될 때에 뒤늦게 후회해 보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셈이다.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사명을 남겨 주신 것이다.

 

마진우 요셉 신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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