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松竹/김철이 2020. 4. 30. 00:55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자신의 삶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 어렵게 느껴지는 일입니다. 우선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또 다른 이들보다 조금은 나은 사람이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잘못 전달되면 '교만'이라는 말을 피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몇일 째 계속 하시는 말씀은 바로 당신과 함께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함께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생명의 빵을 지금의 우리는 성체라고 한정지어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체를 모시는 우리의 삶이란 그야말로 그리스도를 먹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를 따라 살며 그리스도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풀어 설명하려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좋지만 그분의 말씀은 어렵다.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그분을 따르기는 힘들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지만 그분은 하느님이고 나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겸손한 표현인 듯 보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표현들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믿지 않고를 따지는 것과 달리 이 문제는 하느님에게 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진짜 고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의 빵의 직접적인 표현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직접적입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우리에게 하느님이 보내주신 그리스도는 그냥 보기 좋은 전시물이나 위인으로서의 의미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징이고 우리가 따라야 할 교과서와 같은 분입니다. 비슷하게가 아니라 그분처럼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많은 성인들, 성모님으로부터 모든 성인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을 구분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 구분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차고 넘쳐 한참을 달려도 안된다고 생각되지만 예수님은 그 부족함과 상관 없이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이라는 말에 우리는 자꾸만 우리의 약함과 모자람을 문제삼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한가지 기준으로 아버지의 뜻을 가르치셨고 그것으로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결국 심판 역시 이 기준으로 우리를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느끼며 그것을 채우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누군가 혹은 세상에 존재하는 나 외에 있는 것들입니다. 이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또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며 우리는 함께 삽니다. 그 마음과 실천이 모두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부족한 것으로 우리를 대하시거나 그것으로 외면한 적이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우리 중 가장 행복하게 우리를 만드는 이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 하느님을 믿는 이가 가져야 할 근본이고 중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원하고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의 근본에 가져오는 불편함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것 말고를 찾겠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을 위한 이야기일 뿐 근본에 대한 답은 아니라는 것을 들켜버린 이들처럼 물러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미 그런 이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에 희망을 품는 것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포기하지 않으시니 힘을 내어 초대합니다. 생명의 빵에 다가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