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松竹/김철이 2020. 2. 14. 08:49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에파타" 곧 열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선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기적이 등장하고 이 기적으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린 사람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짧고 분명한 기적의 단어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에서 "에파타"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오직 주님과 이 사람만 알아듣는 언어입니다. 굳이 우리가 수화나 수어라고 말하지 않아도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이에게 주님이 건네신 말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손에서 등장하는 "보이는 말"이 그에게만 통하는 말이었습니다. 




곧 우리 귀에 "에파타"라는 말이 들리기 전 주님이 그를 데리고 나가신 부분부터 알 수 없는 행동, 귀에 넣은 손가락과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는 것이 그에게 하신 예수님의 진짜 말씀이었던 겁니다. 그와 먼저 이야기를 하시고 주님은 그를 지켜보는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도록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에게 가능한 것만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합니다. 차이가 차별로 둔갑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 차이에서 있고 없음을 우열로 생각하면 차별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서로의 차이가 어울려 세상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일방적인 기준을 세움으로 모두가 불행하게 되는 일을 우리는 수도 없이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가진 사람의 가치를 누가 가질 수 있는가를 두고 행복을 논하고 희망을 말하며 평화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 없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늘 불행한 인생을 살고 서로 한치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되어주려면 그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합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한 의지와 행동이면 어떤 설명도 주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요구와 이 사람의 필요가 같다고 해서 정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 당신의 마음을 먼저 전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도울 수 있도록 각자의 이해방법으로 이 뜻을 이루어주신 주님의 모습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손가락과 침이, 우리에겐 에파타라는 소리가 주어진 것입니다.